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집에서 기저귀를 갈 때마다 아이가 어찌나 돌아다니는지 한참 씨름을 해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사용하시는 기저귀갈이대와 비슷한 깔개가 주방에 있는 것이 생각나 가져왔어요. 기저귀를 갈자 했더니 아이가 얼른 기어와서 눕는 거예요. 다른 곳으로 가려고 움직이지도 않고 기저귀를 다 갈 때까지 그대로 있었어요. 이렇게 수월하게 기저귀를 갈아본 적이 처음이라 놀랐어요.”  

 기저귀를 갈기 전에 교사는 “기저귀를 갈 것”임을 아이에게 알린다. 깔개를 깔고, 아이를 눕히며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기저귀를 갈아줄게. 잘 누웠구나. 멀리가지지 않고 도와주면 선생님이 잘 갈아줄 수 있을 거야.” 눈을 맞추고 애정 어린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교사는 일관되게 기저귀갈이대를 사용함으로 아이는 깔개를 가져오면 기저귀 간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점심을 먹을 때 아이들은 상에 둘러 앉아 먹는다. 아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는 것에 엄마들은 놀라워한다. “집에서는 따라다니면서 먹여요. 잠시도 가만히 앉아 먹지를 않아요.” 흔히 들을 수 있는 집에서의 아이들 식사모습이다. 왜 집에서와 어린이집에서의 아이의 모습이 다를까? 

아이들은 세상이 질서 안에 있다고 여기며 질서를 기대한다. 질서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자유롭게 움직이고 세상을 익혀간다. 유아들과 생활하는 교사들은 아이들의 이런 전제를 잘 알고 있다. 이를 위해 시간, 공간, 감정의 질서를 아름답게 가꾸어가려 노력한다.

교사가 가꾸는 질서는 강압이나 억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먼저 교사 스스로 내면의 질서를 갖고 있기에 가능하다. 아이들이 생활하기에 가장 적절한 공간을 고민하여 배치하고 그 환경을 자주 바꾸지 않는다. 아이는 각 놀잇감의 자리를 알고 있다. 놀이시간에 흐트러졌던 놀잇감들을 교사가 즐겁게 노래하며 제자리에 정리한다. 이 모습을 아이는 모방하고 참여한다. 

점심이나 간식을 먹기 전, 늘 놀잇감을 정리하고 노래를 부르며 손을 씻으러 이동한다. 한 명 한 명 손을 씻는 동안 아이들은 둘러앉아 기다린다. 모두가 손을 씻고 교실로 함께 가면 교사는 식사를 위해 행주질을 하고, 조금 큰 아이들이라면 촛불을 켠다. 배식을 기다리고 모두 함께 감사의 시를 낭송하고 식사를 시작한다. 영아들은 때로 자리를 떠나 놀잇감이 있는 곳으로 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교사는 담담하게 “공놀이를 하고 싶구나? 그렇지만 지금은 밥을 먹어야해. 밥 먹고 공놀이 하자.”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교사의 애정 어린 말과 행동의 반복이 시간과 공간의 질서 속으로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다. 일관된 몇 번의 반복을 통해 아이는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고 자리에 앉아 끝까지 식사를 마치게 된다. 

시간과 공간의 질서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신뢰감을 준다. 늘 제자리에 있는 놀잇감, 다음을 예측할 수 있는 일과, 일관된 선생님의 태도, 이를 통해 아이는 안정감으로 편안해 한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면 잘 정돈된 교실과 만난다. 제자리에 가지런히 정리된 놀잇감들은 아이의 놀이를 격려한다. 아이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교실에 초대받은 듯 기분 좋게 놀 수 있다. 창의성을 발휘해 놀이에 마음껏 몰입하게 된다. 가정에서도 시간, 공간, 내면의 질서를 형성하는 것은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해 가치가 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이 담긴 어른들의 일관성 있는 말과 행동,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공간의 질서, 진지한 시간의 질서는 아이와 어른들 사이에 실랑이가 필요하지 않게 안전망이 되어준다. 

유아기는 세상이 아름다운 곳, 좋은 곳이라고 여기는 시기이다. 그 좋은 주변의 모든 것을 모방한다. 엄마, 아빠, 어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내면까지 모든 것을 모방한다. 우리의 태도는 그대로 아이들의 태도가 된다. 잔소리나 말은 필요하지 않다. 정성으로 공간과 시간을 가꾸는 우리의 일상이 아이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건강한 양육환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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