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소설가)
하창수(소설가)

역사를 거울에 비유할 때 그것은 당대를 역사라는 거울에 비추어 잘못된 곳을 바로잡으라는 뜻이다. 모든 훌륭한 언설들이 그렇듯 여기에도 간곡한 청원이 담겨있다. 하지만 인류는 지나온 역사의 과오와 실패를 거울삼는 것에 인색했고, 그 과오와 실패가 단지 지나간 시간의 일이었음을 확정하는 데 바빴다. 그래서 대개는 과오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고 재현하며 또 다른 과오와 실패의 시간을 쌓아왔다. 변화는 더뎠고, 이기심과 나태와 보수적 심리는 번번이 그 변화를 주저앉혔다. 남녀차별의 역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성별을 나타낼 때 생물학적으로 확연히 구별되는 ‘섹스(sex)’를 대신해 양성의 사회적 역할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그 사회의 의식이나 역사적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는 ‘젠더(gender)’가 귀에 익숙해진 건 얼마 되지 않는 일이다. UN이 주최한 세계여성대회에서 이 용어가 채택되고 사용이 권고된 게 1995년이었으니.

젠더란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을 때, 귀에 설긴 했어도 그 어의가 버석거리진 않았다. 버석거리기는커녕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남녀문제가 급속도로 완화될” 거라는 낙관과 “남녀갈등도 곧 종식될” 거라는 행복한(!) 예측이 가슴 한구석에 따뜻하게 자리했다. 하지만 지나간 20여년의 시간은 그 낙관과 행복한 예측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남녀를 ‘사회적 성별’로 인식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왔듯 양성평등론자나 페미니스트들의 일일뿐, 남자와 여자 뒤에 ‘혐오’를 끌어다 붙여 남혐이니 여혐이니 하는 용어가 등장하고, 진지한 논의를 저열한 대립으로 뒤엎거나 볼썽사나운 희화로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는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꼭 20년 전, 춘천에 여성민우회가 만들어졌다. 그 창립과정부터 참여한 아내는 이후 20년을 명색이 ‘여성운동가’로 살았다. 30대 후반이었던 ‘그’는 내일모레 60고개를 넘는다. 모태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내 안에 가부장적 의식이 아교처럼 들러붙어 있다는 걸 일깨워준 것도 ‘그’였다. ‘그의 투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가사를 흔쾌히 분담하는 걸로는 다 씻기지 않는, 귀 기울여 듣고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일만으로는 다 넘어서지지 않는 그 무엇의 실체를, 자유와 평등이란 보편적 가치가 생물학적 성별의 다름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생물학적 차이가 곧 ‘한계’가 되고, “남자의 수명은 여자에게 달려 있다”는 식의 인식과 “미투 무서워 미리 펜스를 친다”는 말로 저열한 성의식을 호도하는 것이 ‘수컷’의 정체를 형성한다면, 성의 평등은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남녀평등의 역사는, 이렇게,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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