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관광두레 송미 PD

“물이 있는 곳에 가면 마음이 편해요. 춘천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물이 있어 안정감을 줘요. 서울에 아무리 좋은 직장이 있어도 춘천은 그냥 살고 싶은 곳이에요.”

‘춘천이 마냥 좋다’는 춘천관광두레 송미 PD. 관광두레는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문체부에서 주관하는 사업이다. 관광두레는 ‘지역주민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관광사업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2013년에 첫발을 내디디었다. 2016년에 관광두레 사업을 시작했던 춘천은 올해 다시 선정됐다. 3년간의 사업지원이 끝나고 사업성과를 평가해 2년간 추가로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 송 PD의 역할이 컸음은 물론이다.

관광두레 사업에서 PD의 역할은 무엇일까? “중앙 부처와 지역의 다양한 관계자들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비전과 미션을 중개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매개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송미 PD   사진 김예진 시민기자
송미 PD       사진 김예진 시민기자

사업을 추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의 목소리는 밝고 활기찼다. 춘천에는 현재 5개 사업체가 관광두레로 선정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축적되는 전문성 그 자체가 큰 성과일 수 있는데, 눈앞의 이익만을 먼저 생각하는 사업체들이 많아 힘들었다. 1년 반 동안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섯 곳 중 세 곳의 구성원이 이탈하거나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다행히 각 조직마다 중심을 잡고 있는 사람이 한 명씩 있어 설득과 상호 이해의 과정을 통해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었다.

그는 일을 하는 동안 잘할 수 있을까, 혹시 잘못하고 있지는 않나 싶어 흔들릴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매뉴얼은 정해져 있지 않다. 참여자들이 함께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모두들 그걸 너무 힘들어 한다. 눈높이에 맞게 함께 호흡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3년차에 들어서면서 꽃이 활짝 피었다. 1년차에 성과를 낸 지역들 중에서는 오히려 나중에 깨지고 흩어진 곳이 많았다. 춘천은 3년 내내 우수 지역이었다. 

그는 다니면서 보고 듣는 것 전부를 관광두레와 연관해 생각한다. 밤낮으로 고민이 많아 다른 지역 PD들은 너무 과하다고 말하지만,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좋다. 그에게 관광두레는 여행 같아서 행복하다.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에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강원대에서 요트선수로 생활했다. 졸업 후 서울의 한 은행에 입사했는데 자신이 가야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과감히 정리했다. 1999년 워킹비자를 받자마자 일본으로 무턱대고 떠났다. 운 좋게 일본에서 유명한 호텔에 취업했다. 일본어를 몰라 1년 동안 독학으로 책 한 권이 다 닳도록 공부했다. 절박해서 그런지 일본어를 빨리 익혔다. 지금도 급하면 일본말이 먼저 나온다. 일을 하면서 돈이 모이면 다른 나라를 여행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 뭘 하고 있나 싶어 홋카이도 대학에 들어갔다. 지역의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 관광학을 전공했다. 건물을 짓거나 나무를 베지 않고 자연 그대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다. 그 과정에서 결혼도 하고 지역시민단체도 만들었다.  10년 정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일본의 문화를 알리고 일본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했다. 하다 보니 한국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고려대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문화나 언어를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통역과 여행 관련 일들을 했다. 그런 경험들이 관광두레를 운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강원대 강의, 일본어 통역과 번역, 정부기관이나 일본 관광청 관련 일 등 그가 하는 일은 많다. 직함도 여러 개다. 그는 원래 농촌에 관심이 많아 농업자원경제를 전공했다.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한살림에서 생명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유교적인 집안에서 자라 성균관대에서 한학을 공부했던 아버지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제자였다. 국어교사라서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별도로 야학을 하셨다고 한다. 원주에서 협동조합이 처음 생기고 나서 형편이 어려울 때는 집을 팔아 자금을 보태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알게 모르게 그에게 끼친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민들에게 관광두레 사업 설명회를 하는 송미 PD.       김예진 시민기자
주민들에게 관광두레 사업 설명회를 하는 송미 PD.       사진 김예진 시민기자

그래서일까? 그는 일찌감치 자립심이 강했다. 단 한 번도 엄마가 교복을 빨아준 적이 없었다. 고3 때는 밤12시에 집에 돌아와 옷을 빤 후 다음날 학교에 입고 갔다. 대학 때부터는 스스로 돈을 벌었다. 세 남매가 모두 대학에 다니다 보니 부모님의 부담이 컸다.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이런 성장과정과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 등이 관광두레 PD로 일을 하는 데 많은 자양분을 제공했다.

“여행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부모와 여행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습니다. 직접 가지 않아도 가상여행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전문가 인큐베이팅을 하고 싶어요.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진짜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멘토가 별로 없거든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방법을 찾고 공유하고 싶어요. 그런 여행학교나 전문 지식기반의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춘천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확실한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내딛는 모습이 오버랩 됐다.

그에게 다시 춘천에 대해 물었다.

“춘천은 수변자원이 가장 큰 장점이죠. 집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으로 물가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가 별로 없거든요. 도심에 봉의산도 있지만,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인데다 접근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 참 많거든요. 게다가 시청과 도청이 있어 행정도 원활하고요. 무엇보다 작가들이 많아 문화예술의 측면에서 인적자원이 풍부하다는 것도 강점입니다.”

열정적인 어조로 말하는 그를 바라보며 춘천이 더욱 아름답게 발전하기를 소망해 본다. 

이은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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