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준 기자
유용준 기자

‘민주 사회의 구성원으로 권력 창출의 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 어느 사전에 나와 있는 시민에 대한 정의다. 이 정의에 비추어본다면, 나는 ‘춘천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시민은 될지언정, ‘춘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으로 춘천시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시민은 아직은 아니다.

단언하건데 28만 춘천시민 가운데 대다수는 행정상의 시민일 뿐, ‘시민혁명’이나 ‘세계시민’이란 단어에서 쓰이는 시민은 아닐 것이다. 행정상의 춘천시민들이 사전적 의미에 부합하는 시민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춘천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춘천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시청 홈페이지에만 들어가도 정보는 차고 넘친다. 문제는 교육의 부재다. 

지금 필요한 ‘시민 교육’은 학교 교과서의 ‘민주주의 교육’, ‘통일 교육’ 등의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제대로 알게 하는 것이다. “매일 버려지는 쓰레기는 대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집집마다 공급되는 물과 전기는 어디에서 정수되고 발전되는 걸까? 대략 몇 개의 소하천이 있을까? 시내에는 몇 개의 다리가 있을까? 시민들이 모여 만든 단체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시의원은 몇 명일까? 시청 공무원 숫자는 얼마나 될까? 어떤 위원회들이 있을까? 동네마다 있는 CCTV는 어디에서 관제할까? 화장터와 장지와 납골당은 어디에 있을까? 강남동과 온의동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체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지역사회학(Community Studies)이라는 과목을 신설하고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친다면 어떨까. 지역사회학이라는 명칭만 공통으로 쓰고, 춘천에서는 춘천에 대해, 양구에서는 양구에 대해 가르치면 될 것이다. 해당 교과서는 해당 시·군 지자체에서 만들면 된다. 이미 각 지자체가 보유하고 있는 방대한 지역 정보들이 유용하게 쓰일 것은 자명하다.

올해 초 문을 연 춘천학연구소가 춘천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춘천지역사회학은 현재의 춘천이 운영되고 작동되는 방식을 가르치는 데 있어 상보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피상적이고 지엽적인 정보성 지식을 머릿속에 하나 더 넣자는 게 아니다. 조선 제22대 왕 정조는 “지금 사람들은 대관(大官)에 이르더라도 의견을 내어 곧장 행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는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일 뿐”이라고 했다. 굳이 정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는 만큼 행하게 된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명제다.

‘춘천, 시민이 주인입니다’라는 문구가 곳곳에서 보이지만, 주인은커녕 시민도 되기 힘든 현실이다. 알아야 사랑도 하고 비판도 한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