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6월부터 강원도 자치농정 구현을 위한 거버넌스 조직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농정은 언제나 구조와 숫자에 얽매여 건조하다. 지방농정은 삶의 질에 주목하며 사람을 중심에 두는 촉촉한 농정일 때 옳다. 

오랜 세월 지방농정은 중앙농정의 수행자였을 뿐 자치농정은 아니었다. 자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최근 들어 지역단위 푸드플랜이나 농업회의소 등 자치의 공간이 거버넌스 형태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간이 열렸다고 곧바로 자치 거버넌스가 원활하게 작동될 리 없다. 이 어려움은 농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民)은 선거권이라는 결정적인 권력을 소유하고는 있으나, 그 한나절 말고 나머지 모든 일상에서는 권력으로부터 소외되는 게 현실이다. 국가(정부)가 일방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던 과거 상황에서는 거버넌스(Governance)든 거번먼트(Government)든 실질적인 의미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버넌스를 협치·공(共)치로 받아들인다. 민주적·역동적으로 개념이 변화한 것이며, 마침내 거버넌스는 거번먼트에서 분리되어 일상적·제도적으로 권력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것을 통칭한다. 동서양 막론하고 민 스스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시민이 주인이라는 슬로건은 거버넌스 패러다임의 춘천식 표현이다. 여러 층위에서 새로운 시민참여 방식으로 벌어지고 있는 춘천의 거버넌스는 성공적인가? 아직은 성공 여부를 논하기는 이르다. 그렇지만 좋은 거버넌스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고 반드시 이야기해야만 한다. 

일찍이 주요 국제기구들은 좋은 거버넌스의 구성요소에 관한 지표를 제시해왔다. UNDP(유엔개발계획)는 대표성·참여성·투명성·책임성·효과성·형평성·안정성 등을, EU는 개방성·참여성·책무성·효과성 등을 거론하는 식이다. 국내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것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곱씹어보면 하나하나 가볍게 볼 지표들이 아니다. 

춘천의 거버넌스가 좋은 거버넌스가 되려면 이러한 지표들에 비추어 설계되어야 하고 평가를 해야 한다. 여러 지표들 중에서 가장 쉽게 생각되지만 사실은 가장 어렵고 복잡한 지표 하나를 짚어볼까 한다. 바로 ‘대표성’이다. 

이를테면, 교동에 사는 아무개라는 사람이 전체 교동 주민을 대표한다는 것은 어떻게 실질적인 구현이 가능한가? 청년 아무개가 춘천 전체의 청년을 대표한다는 것은? 소상공인 아무개가 춘천의 모든 소상공인을 대표한다는 것은? 어떤 민간단체의 대표는 그 분야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되는가? 어떤 경우는 차라리 제비뽑기가 대표성 부여에 나은 방식이 아닐까? 우리는 대표자의 대표성을 어떤 경우에 신뢰하게 되나? 도대체 대표성이란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가? 

나쁜 대표성에 대해서는 누구든 상식적으로 안다. 대표성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경우다. 강력한 법으로 처벌해도 그런 의원 나리들이 여전히 있는 것을 보면, 규제가 어려운 영역에서는 크고 작은 나쁜 대표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나쁘다고 하기는 곤란하지만 좋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대표성도 있다. 오로지 이익만을 대표하는 경우다. 자신이 속한 계급이나 부문의 이익을 철저히 대표하는 것이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라면 철저함은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버넌스의 경우 대표성의 성격이 달라진다. 이익은 공(公)적 철저함, 공(共)동체적 철저함으로 승화되어 다뤄져야하기 때문이다.

좋은 거버넌스의 좋은 대표성은 공공선(公共善)을 근본으로 삼는 경우에 비로소 구현된다. 대표성을 획득하고 부여하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대표성은 관계 속에서 강화되거나 약화되는 성격을 지닌다. 공공의 가치에 충실하면 그게 누구든 대표성은 강화된다. 이익에만 매몰되면 대표성은 약화된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통제하는 문제는 모든 지성의 고민거리였을 터, 스승들은 의로움을 지표로 제시하며 역설했다. 어떤 경우도 이익의 문제와 무관한 거버넌스는 없다. 이익을 논함에 있어 의로움에 비춰 심사숙고하라는 말씀이다. 좋은 거버넌스는 기계적인 대표성이 아니라 공공선이라는 의로운 가치로 심화되는 대표성으로 구현될 것이다. 좋은 대표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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