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영 (별빛 나이들기좋은마을 모둠장)
최대영 (별빛 나이들기좋은마을 모둠장)

황보윤의 단편소설 《완벽한 가족》은 취업이 어려워지고 출산기피가 늘어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가 4단계 생애시스템을 도입한 40여 년 뒤에 벌어지는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그리는 4단계 생애시스템은 취업과 결혼, 자녀 양육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국가가 시스템화하면서 생기는 긍정과 부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80세가 되면 누구나 안락사로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론 미래 현실에서 실제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80세 어르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뭘까? 보통은 ‘생산력이 떨어지고,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하는 시기의 사람’일 것이다. 더 나아가 ‘80세 어르신’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면 만날 기회가 적고, 직접 경험한 바도 없기에 특정 사건에 따라 얻은 정보를 가지고 하나의 보편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고령화 비율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르신들과 대면할 기회가 거의 없는 일상을 지내다 보면 ‘80세 안락사법’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위의 내용이 황당무계하여 거론할 바 아니라고 치자. 현실은 어떤가? 당장 우리 마을 아이들만 해도 마을어르신들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학교는 마을에 위치할 뿐 마을과는 무관하게 교육을 한다. 아이들은 정규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지역아동센터에 와서 생활한다. 크게 한 마을에 살지만 공간은 따로 있고 만날 기회는 없는 것이다. 

‘별빛’은 아이들이 마을어르신을 만날 수 있는 틈을 지속해서 만들어왔다. 왜냐하면 직접 만나는 일이 서로에게 가장 큰 배움이 일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달 전에 아이들과 ‘한 끼 줍쇼?’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둘씩 짝을 지어, 먹고 싶은 것을 마을어르신에게 부탁드리고, 저녁식사를 마을어르신 댁에서 함께 먹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은 마을어르신의 입장을 고려해서 된장찌개, 김치찌개, 달걀부침, 김치볶음밥을 먹겠다고 했다. 마을어르신들은 찬이 없어서 어쩌지, 하면서도 즐겁게 승낙해주셨다. 아이들은 마을어르신을 만나는 것이 심심한 일이라고 당일은 투덜대면서도 며칠이 지나면 언제 또 하냐고 묻는다. 마을어르신은 “애들 챙기는 게 다 그렇지 뭐”, “언제 또 와서 먹으라고 해” 하시며 웃으신다.

요즘은 마을어르신을 만나면, 마을아이들과의 인사 나누기로 꼭 안아드리라고 부탁을 드린다. 서로에게 멋쩍은 이 행동 하나에 관계의 거리가 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마을어르신들은 평생 농사를 짓느라 당신들의 자녀를 안아줄 겨를이 없었다. 당연히 누군가를 안는다는 것이 쑥스러운 일이었다. 아이들이 안기면 처음엔 멋쩍어하면서도 어르신은 꼭 안으며 한 마디 하신다. “처음이야. 누가 날 안아주는 거.” 이 한 마디에 서로가 따뜻해진다. 결국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구나 싶다.    

다시 앞 문제로 돌아가서 우리 마을아이들이 청년이 되었을 때 ‘80세 안락사법’을 제정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인공지능이 판치고 로봇이 다해주는 세상이 되었겠지만 적어도 머리에서 또렷하게 내려온 끓어오르는 가슴이 말해주는 대로 하지 않을까?

그래서 마을에서 꿈꿔본다. 마을아이들이 마을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언제나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를. 한 공간에 서로의 공간이 있는 ‘따로 또 같이’가 실현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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