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1996년 독일 뮌헨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파업했다. 자신들의 임금을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절반 수준으로 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자신들과 동등하게 올려달라는 괴이한(?) 파업이었다. 이 파업은 독일 전역으로 번져나갔고 결국 독일 정부는 외국인 건설 노동자들에 대한 최저임금 설정으로 타협했다. 최저임금 규정이 없던 나라에서 외국인 건설 노동자를 위한 최저임금 규정이 먼저 생겨난 것이다. 

얼핏 보면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인류애 혹은 동지애에서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독일 건설 노동자들의 정교한 전략일 뿐이었다. 당시 독일은 건설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이 노사합의에 의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도 내국인과 동일한 임금과 근로조건을 적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설업 분야에서는 아직 이 같은 합의가 없었기에 기업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반값 이하의 임금으로 고용하며 이익을 불리고, 내국인 건설 노동자들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며 건설현장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독일 건설 노동자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 같은 파업을 벌였던 것이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적용하면 건설업체가 자국민을 제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간파한 전략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최저임금 규정이 생겨난 후 이주 노동자들이 독일에서 일자리를 찾는 일이 더 어려워지긴 했지만, 일단 고용되면 독일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나 차별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도 있었다. 더 이상 노동자의 임금을 낮출 수 없었던 독일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에 매진하고, 국가가 노동·학습 병행의 이원적 구조(Duales System)로 청년 노동자들을 훌륭한 기술 인력으로 키워 경쟁력을 높이게 된 것은 훗날 독일 경제가 누린 가장 큰 열매였다.

대한민국의 제1 야당 대표가 “외국인 근로자에게 똑같은 임금을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한 데 이어 그의 당은 사실상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차별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중소기업의 요구를 대변했다고 변명하지만 ‘차별 금지’라는 보편적 가치를 버린 것이고 역차별 대상으로 지목받는 내국인 노동자와 청년 ‘취준생’의 현실에도 눈을 감은 것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은 정규직 중심의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 중심의 2차 노동시장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노동시장의 10.7%를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은 월평균 임금 398만원인데  중소기업 정규직은 그 66%인 264만원이다. 대기업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슷한 258만원이다. 중소기업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대기업 비정규직의 60%인 152만원인데 이는 대기업 정규직 임금의 38%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30년 일하는 것보다 대기업에서 12년 일하는 게 더 많은 수입을 보장받는다는 뜻이다. 설상가상, 대기업 노조들은 정규직만의 울타리를 치고 혜택을 외치며 권력을 쌓는다.

이런 현실에서 자칭 ‘보수주의자들’의 언행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춰 내국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묶으려는 교활한 속셈이거나, 해자(垓字)를 더 넓고 깊게 파서 도무지 건널 수 없는 초격차 사회를 만들겠다는 어리석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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