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덕 (춘천시민연대 운영위원장)
권오덕 (춘천시민연대 운영위원장)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로 시작되는 김지하 시인의 詩 “타는 목마름으로”는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로 끝을 맺는다.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시인의 삶과 달리 詩에서 울부짖었던 민주주의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으로 남아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이 되고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이 되어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쓸 수밖에 없는 이름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기에 이토록 진한 그리움처럼 남아 있는가. 1945년 이후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에는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독재 권력에 맞서다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한 피로 쓴 민주주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 민중의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고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시민들이 결정하는 지방자치제를 실현하는 등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과를 일궈냈다. 권력을 교체하고 삶의 다양한 의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투표행위와 선거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주주의를 기다리는 타는 목마름의 갈증은 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일랜드 메이누스(Maynooth) 대학의 거트 비에스타(Gert Biesta) 교수는 민주주의를 역사적 발명품(historical invention)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며 인간으로서 우리가 함께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된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자유와 평등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 건강, 안전, 교육, 기본소득 등의 권리가 생겨났으며 이것을 민주주의의 적극적 차원인 연대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성불평등, 인종불평등, 계급불평등, 소유의 불평등, 자본의 불평등 등 인간의 자유함과 평등함을 가로막고 있는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책무다. 따라서 민주사회의 시민은 인간의 기본권 보장과 실현이 보편적 상식이 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투표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는 유권자가 아니라 다양한 권리를 누려야 할 주권자, 자유와 평등을 위한 연대의 주체로서 정치적 존재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우리가 여전히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여럿이 함께 손잡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촛불혁명은 우리 사회가 선거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 넘어 참여민주주의의 열매를 맛보게 했고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물음을 던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숙의민주주의의 중요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지방선거 과정에서 시민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시민민주주의의 주체 형성에 대한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전달되었다. 이제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시민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조례를 제정하면서 민주주의의 요체인 시민성과 민주성, 참여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시민을 시정의 한 주체로서 적극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민주주의를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라고 보는 불편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성에 기반한 삶을 추구하려는 사회 주체들의 연대, 어젠다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원칙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인식할 때 민주주의는 타는 목마름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삶의 가치로서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 파커(Parker. W)의 ‘민주주의자들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는 말을 되새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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