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빌의 올드팝 DJ 오세윤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이 시작되는 어귀에 자리잡은 2층의 잭슨빌, 90년대에는 ‘초원의 집’이었다고 확인해준 덕분에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빈티지 레코드판에서 올드팝의 음악이 흘러나올 거란 예상과는 달리 요즘 핫한 팝송들이 쾅쾅 시원하게 힘 있게 흘러나오고 있어 주인장의 음악 사랑이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잭슨빌의 나이는 16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조사를 제외하고는 매일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한결같이 쉬지 않고 문 여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머쓱하게 웃는다. “아무것도 안 하면 뭔가 이상해요. 늘 해왔던 거라서.” 간단하면서도 압축된 대답은 그의 열정적이고 성실한 음악인생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사춘기 시절 방황을 많이 했어요. 부모님 속도 좀 썩여 봤고요.” 4살 터울인 형이 만지는 기타를 따라 치던 소년은 미군기지가 있어 AFKN의 주파수가 잘 잡히는 춘천에서 팝송을 원 없이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매력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잭슨빌 DJ 오세윤 대표
잭슨빌 DJ 오세윤 대표

노트에 빌보드차트 100위까지의 곡들을 빼곡히 적으며 팝송을 익히던 소년에게 음악은 어머니 품 같은 위안을 주었다. 당시 이글스(Eagles)의 히트곡 라인 아이즈(Lyin’ Eyes)의 앨범을 처음 구매하며 LP판을 모으기 시작했다.

70년대 후반 누님, 매형과 놀러간 이태원의 클럽에서 음악신청이 예사롭지 않던 청년은 클럽 사장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DJ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곳에서 1년쯤 음악을 하던 중 송탄의 클럽대표가 또 다시 제안을 하여 1년간 송탄의 큰 클럽에서 DJ를 맡게 되었다. 이후 군대를 가기위해 다시 찾은 춘천의 빅토리아 음악다방과 마로니에 카페가 그의 다음 일터가 되었다.

승승장구하던 시절만 있지는 않았다. 제대 그리고 결혼 후 뮤직타운이라는 음악다방을 운영했지만 유류파동으로 인해 접게 되었다. ‘캠프 페이지’ 앞 세븐클럽에서 다시 DJ로 활약할 무렵 큰아들이 태어났다. 가장이 된 그는 87년, 10평 남짓한 그의 인생 클럽인 PARKING을 열어 20년간 운영하게 되었다. 그곳은 타국에서 생활하는 미국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최고의 위안처였고 그들은 밤마다 ‘미스터 오!’를 외치며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친구가 되었다.

깨끗하게 음악과 맥주만을 추구하는 클럽은 근처에서 그의 클럽이 유일했다. 깨끗한 매너의 음악애호가들이 모여 들어 10평의 좁은 공간에 100여 명의 손님들이 꽉꽉 차 수입도 대단했다고 한다. 그가 LP판으로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하면 금세 그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흥을 고조하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는 그의 음악적 재능은 이방인들의 마음을 활짝 열었다. ‘장사 못하는 오 사장’에게 그의 손님들은 그 당시 구하기 힘든 양주를 군인의 할당치 만큼 받아다가 공짜로 주며 팔아보라고 하며 그의 가게를 도왔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갓 돌이 지난 딸아이의 백혈병은 청전벽력이었다. 밤에는 클럽 일을 하고 아침이 되면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운전해 달려가 치료받기를 10여 년. 다행히, 그 힘들었던 투병생활 끝에 지금 스물아홉 살이 된 딸은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PAKING을 운영할 때였어요.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틀 연속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어요. 그 당시 김현식의 ‘사랑했어요’가 크게 유행하고 있을 때였는데 같이 오던 사람이 알려주어 그 사람이 김현식임을 알게 되었어요. 제 클럽은 내국인들이 거의 발걸음 하지 않는 곳임에도 김현식 외에도 해바라기의 이광준, 엄인호, 신촌블루스 멤버 등 많은 뮤지션들이 찾아 왔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이남이 씨와도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는데 오 사장이 말하는 이남이 씨는 노래를 정말 잘하는 가수였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찾아와 노래제목을 알려주며 노래신청을 할 때, 그 노래의 가수 이름을 제가 바로 말해주면 정말 좋아해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하고 신뢰감이 엄청 생기는 것 같아요. 그렇게 몇 곡을 서로 주고받다보면 몇 년의 우정을 뛰어넘는 친구가 될 때가 많습니다.”

멋진 레코드 컬렉션을 펼쳐 보이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미술계의 최고봉 앤디워홀과 협작한 ‘The Velvet Underground & Nico’는 외국의 친구가 사서 보내준 귀한 보물이라며 조심스레 펼쳐 보여줬다. 

신청한 스콜피언스의 할리데이의 레코드판은 빽빽이 꽂혀진 레코드판들 사이에서 10여 초만에 그의 손에 쥐어졌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선율은 방금 들었던 MP3의 음감보다 훨씬 정감 어렸고 곁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생생히 울려 퍼졌다. 어떻게 이걸 다 찾아내느냐고 하자 아티스트 이름의 이니셜 순서대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라 했다. 웬만한 곡은 다 있으니 듣고 싶은 곡은 뭐든 신청하라는 그의 눈빛은 아직 소년의 맑음 그대로였다.

신청곡을 받고 있는 오세윤 씨.
신청곡을 받고 있는 오세윤 대표

“문화는 그냥 느끼고 즐기면 돼요. 새로운 문화는 일단 받아들여보고 안 맞으면 배척하면 되고요. 미리 걱정할건 없어요.” 오픈 마인드의 그가 60의 나이에도 찢어진 청바지가 잘 어울려 보이는 이유인지 모른다. 

한쪽 귀에 멋스럽게 걸린 귀걸이가 불빛에 영롱하게 반짝였고 이어지는 음악들의 소리는 춘천의 밤을 멋지게 채워갔다. 그에겐 음악을 배우고 싶다는 열정까지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팝송을 공부하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그와의 대화는 음악방송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는 듯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꿈은 소박하다. 고생한 아내와 세계여행을 하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현재의 업소에서 노래와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춘천시민보다는 외국인관광객과 다른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론니 플래닛(Lonely Planet) 등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 3곳에 잭슨빌이 소개돼 있어서이다. 마침 인터뷰하러 간 시간에는 20대의 젊은 커플이 음악신청을 하고 있었다. 

춘천의 밤, ‘미스터 오’와 함께하는 자랑스러운 명소에 지인들을 데려가고 싶어졌다. 올드팝을 신청할 수 있는, ‘시간을 초월한’ 공간에서 오래도록 많은 이들의 추억을 되새겨주는 DJ로 남아주길 바란다.

 편현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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