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열전] 짝사랑의 맛
[고백열전] 짝사랑의 맛
  • 홍석천 기자
  • 승인 2019.07.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때는 중학생 시절, 나는 기숙사가 딸린 농업전문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요즘에는 이런 대안학교가 많지만 1993년도에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고 한 학년에 스무 명씩 전교생 60여 명의 작은 학교였다.

오전에는 주로 일반 교과를 공부하고 오후에는 농장에 나가 작업을 하곤 했다. 밭농사도 있었지만 특히 배농사와 호두농사를 크게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품으로 팔기에 용이한 품목을 골랐을 것이다. 따라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중학생에게는 조금 가혹하다싶을 정도로 농사일에 전념해야만 하는 환경이었다.

일러스트=정현우(시인·화가)
일러스트=정현우(시인·화가)

사실 몸이 근질근질한 한창때의 남학생에게 농사일이라는 게 좀 따분한 구석이 있다. 특히 늦봄에 배 봉지를 씌우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힘을 쓰는 일도 아니고, 수확의 기쁨을 느끼는 일도 아니고, 유황가루 펄펄 날리는 봉투를 하나하나 씌우고 묶는 일은 따분하다 못해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작업에도 유일한 기쁨은 있었으니 바로 여학생과 싱거운 얘기를 주고받으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맛이었다. 호르몬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사춘기의 남학생과 여학생을 기숙사에 가둬놨으니 학생들끼리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은 당연한 이치. 남학생들은 배 봉지를 옆구리에 끼고 마치 벌처럼, 나비처럼 과수원을 휘젓고 다니곤 했다. 조금 공평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에 따라 여학생들의 희비도 갈렸다. 예쁜 여학생이 서 있는 배나무에는 서너 명씩 되는 남학생들이 붙어 서서 배 봉지를 싸고, 그렇지 않은 여학생이 서 있는 나무는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불공평하기는 남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처럼 별 볼일 없는 남자들은 배나무 가지 너머로 흘끗 쳐다볼 뿐, 감히 인기 있는 여학생의 곁엔 다가갈 생각도 못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못난이들이랴. 애끓는 마음은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같을 수밖에.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 A도 나처럼 똑같은 못난이였지만 얼굴이 동글동글하니 예쁘고 성격이 활달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학생 B에게 푹 빠지고 말았다. 그러한 경우, 대개의 못난이 남학생들은 중학생답게 그 절절한 마음을 부치지 못하는 편지에 쓰거나 일기에 쓰면서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그런데 친구 A는 조금 엉뚱하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짝사랑의 아픔을 표현했다. 그것은 명찰에 달린 옷핀으로 배에다가 깨알같이 ‘A♡B’라고 새기는 것이었다. 관광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원시적 주술행위 같은 것이었다. 굳이 배에다 새긴 이유를 나중에 물어보니 단지 배가 지천에 널려 있었고 온종일 배 봉지를 싸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가을이 되어서야 벌어졌다. 갓난쟁이 머리통 만하게 커져서 배 봉지를 찢고 나온 배에는 깨알만하던 글씨가 무슨 상표처럼 큼지막하게 ‘A♡B’라고 아로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착한 내 친구가 얼마나 일은 또 부지런히 했던지 소위 ‘짝사랑 고백 배’가 10박스는 족히 넘게 나왔다. A는 농업선생님께 “배가 커져도 글씨는 안 커질 줄 알았다”며 울먹여 보았지만 선생님의 황당한 표정은 가실 길이 없었다. 여학생 B의 황당한 표정이야 말하여 무엇하리.

세상사가 뭐, 다 뜻대로 되던가? 사귄다는 둥, 헤어졌다는 둥, 3년 동안 울고 웃고 하더니만 동창끼리 결혼한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은 심심하면 이따금 배 사진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린다. B는 여전히 착해서 웃어넘긴다. 그런데 배는 어떻게 됐냐고? 전교생이 겨울까지 후식으로 배만 먹느라 아직도 배를 싫어하는 녀석들이 나를 포함 꽤 있다는 사실만 전해 드린다.

정리 | 홍석천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