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위원
이충호 편집위원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옐로스톤에서 마지막 늑대가 사라진 것은 1926년이었다. 그것도 사냥꾼이 아닌 공원 관리요원의 총에 맞아서. 당시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엘크와 영양을 보호하기 위해 늑대를 솎아낸 결과였다. 천적인 늑대가 사라진 공원의 왕은 황소만 한 덩치를 가진 사슴 엘크였다. 엘크의 개체수가 급증하자 옐로스톤의 땅과 나무, 강이 시들해졌고, 어린 사시나무와 버드나무가 자라지 않으면서 강둑은 무너졌다. 큰 나무가 줄어들자, 이를 이용해 자기들만의 댐을 만드는 동물 비버의 삶이 위기에 빠졌다.

결국 캐나다에서 늑대 31마리를 데려와 라마계곡에 풀었다. 엘크 수가 줄어들면서 나무들은 크고 무성해졌으며, 비버는 댐을 만들었다. 21번 늑대는 한 번도 싸움에 진 적이 없고, 한 번도 패배자를 죽이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무리를 37마리까지 불리며 ‘완벽한 늑대’로 유명세를 타는 등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지리산에 풀어놓은 반달가슴곰이 현재 64마리로 예상보다 빨리 늘어나, 국립공원공단이 추정한 포화상태 70마리에 거의 다다랐다는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서 우리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로 전해 듣는다. 반달가슴곰 RM-62번이 등산로에 나타나 생수통의 물을 마신다든가, 북한에서 들여온 NM-14번 곰이 암컷 곰들을 독차지해 반달곰의 암수 성비가 7:3으로 기울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식이다.

노루귀, 노루발풀, 노루삼 등의 야생화에다 노루궁뎅이로 불리는 버섯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노루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친숙한 ‘동무’였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노루가 일제강점기 때부터 포획과 남획으로 1980년대에는 멸종 위기 동물이 되어버렸다. 특히 제주노루는 제주에만 존재하는 특산종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생물다양성의 관점에서도 반드시 보호 관리가 필요한 야생동물이라고 한다. 1987년부터 벌어진 대대적인 노루 살리기 캠페인 덕분에 2011년에는 개체수가 2만 마리를 넘기도 했다. 달이 둥글면 이지러지고 그릇이 차면 넘친다고 했던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노루를 유해 동물로 지정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치자 제주도는 2013년 7월 1일부터 한시적으로 해발 400미터 이하 농경지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서 포획을 허가하기에 이른다. 

지난 6년간 대대적인 노루 포획이 이뤄지면서 현재 노루는 세계유산본부가 적정 개체 수로 제시했던 6천110마리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3천800여 마리로 줄어들었다. 적정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한 과학적 분석과 예측이 빗나간 셈이다. 이번엔 ‘노루의 씨가 마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고 제주도는 지난 7월 1일부터 노루에 대한 유해야생동물 지정을 풀고 포획을 금지하기로 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처음 등장한 ‘빅 브라더’는 정보의 독점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자를 말한다. 소설 속 빅 브라더가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회 곳곳을 끊임없이 감시하며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듯이 우리도 동물들의 영역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변덕에 따라 ‘멸종위기동물’로 분류돼 보살핌을 받다가 ‘유해 동물’로 분류돼 총소리에 쫓기는 ‘동무’의 심정을 우리가 알 수 있을까? 권력자의 선택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운명을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지 못하는 약자의 태도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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