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춘천을 읽다] ‘벤자민나무 그늘 아래서’
[시인, 춘천을 읽다] ‘벤자민나무 그늘 아래서’
  • 금시아(시인)
  • 승인 2019.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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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아(시인)
금시아(시인)

‘벤자민나무 그늘 아래서’는 해체시의 선두주자로 불리는 박남철 시인의 시다. 그는 25년 전 이 시에서 춘천을 ‘진경춘천산수도’라 노래했다. 그리고 시인은 어느 날, ‘자발적인 납치’ 라며 춘천의 어느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 벤자민나무 화분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강사 일도 작파하고 미군부대 캠프 페이지와 먼 산줄기들을 내려다보며 자유로운 상념에 빠진다. 그저 고요히 배경이 된  춘천은 이렇듯 산과 물처럼 자유를 찾아온 이방인들의 은둔과 사랑의 밀회를 너그럽게 용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박남철은 기존 질서나 도덕률과 시 형식 등을 파괴하는 해체, 인용, 그리고 패러디를 통해 세상에 항의한 시인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자질구레하지도 못한 상처들을 아주 많이 받게 되어’ 문득 춘천으로 날아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천 년에 걸친 인류사적인 ‘나는 나다’라는 명제를 자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인은 2014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결핍에서 의지적인 초월로 영원한 자유를 찾아 떠난 노마디즘*적인 시인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산과 물의 도시 춘천은 시인이 스스로 자처했던 그의 ‘정신적인 휴헐처’가 된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도 춘천이 배경이다. 연극배우인 경수(김상경)는 배역도 다 잃고 때마침 전화한 선배 성우를 찾아 무작정 춘천으로 온다. 청평사 가는 배를 타고 가며 경수는 성우에게서 ‘회전문’에 관한 전설을 듣는다. 영화 ‘생활의 발견’은 경수의 ‘아름다운 도망’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회전문을 통해 경수의 노마디즘적 사고, 곧 그의 자유로운 유목적 회귀를 따르고 있다. 

춘천은 유난히 안개가 많다. 안개의 계절에는 자신을 다 내려놓은 채 며칠 동안만이라도 ‘안개의 포로’를 자처해봄직 할 만할 도시다. 도시는 산과 물 사이로 사계절 봄이 흐르고 아름다운 자연과 슬픈 전설과 모호한 안개가 어우러져 인간 본연의 유목을 꿈꾼다. 그래서 절망과 슬픔에 빠져 고뇌하는 자들은 도시를 내려다보며 자신을 용감하고 대담하게 다시 일깨우기도 한다. 

춘천에서는 누구라도,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시가지를 내려다본다면 금세 시인이 지적한 ‘진경춘천산수도’에 듦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 데서나 그저 무료하게 아무 생각에라도 잠기면 어떤 배경도 되는 춘천. 춘천은 시각이 돌아다니는 ‘노마드의 세계’**다.

* 어떤 특정한 방식이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삶.
**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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