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 기자
홍석천 기자

1993년 발간된 헬렌 피셔의 《성(性)의 계약》은 인류 최초의 직업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보여 준다. 보통 우리는 인류가 사냥과 채집에 종사하다가 이후 정착생활과 함께 농사에 종사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사냥과 채집은 동물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생물학적 행위이지 직업은 아니다. 헬렌 피셔는 ‘인간에 해당하는 계통 중 최초의 것’인 프로토호미니드(protohominid) 사이에서 계약을 맺는 최초의 사회적 직업이 보육교사라고 주장한다.

어른들이 함께 음식물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면 보육교사는 마을에 남아 아이들을 돌본다. 그리고 사냥과 채집이 끝나고 돌아오면 보육교사에게 음식물을 나누어 준다. 그런 계약이 가능한 이유는 서로 동등한 가치를 교환하기 때문이다. 보육교사는 음식물 확보를 포기하면서 새끼를 돌본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일터로 나가는 어른들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새끼들의 생명을 맡긴다. 이런 튼튼한 믿음 안에서 최초의 직업이 발생했다. 이후의 다양한 직업과 사회적 계약은 모두 여기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이 근원적 계약이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가? 부모는 아이들을 키워내는 보육시설과 학교를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한다. 보육교사와 교사들도 자신이 맡은 사회적 역할에 대해 회의한다. 보육시설에서 자행되는 아동학대에 대한 뉴스와, 쌍둥이 형제가 싸워 부모가 학폭위 가해자이자 피해자 부모로 출석했다는 웃지 못할 뉴스를 보며 망연자실한다. 출생률은 곤두박질치고 국가 예산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다른 문제와는 달리 나아질 기미가 없다. 이 계약은 다른 계약에 기대지 않은 최초의 계약이고 믿음을 바탕으로 한 계약이기 때문이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2016년 저출산 문제를 이민자를 대거 수용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뭇매를 맞은 사건이 있었다. 언뜻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대중의 지탄을 받은 이유는 바로 저출산 문제를 단순히 노동력 감소의 경제적인 문제로 납작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늦은 감이 있지만 이러한 문제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마을공동체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을 통해 사람 사이에 신뢰를 회복하는 정책에 국가가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6일 시청에서 열린 국제협동조합의날 기념행사에서는 ‘별빛사회적협동조합’, ‘신나는협동조합’ 등 춘천에서 아이를 키워내는 일에 직접 뛰어든 단체들의 노력이 영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날 이재수 시장은 협동을 통한 상생의 길에 시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약속했다. 일단 다른 문제는 차치하자. 아이를 맡기고, 맡을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자. 이후의 계약들이야 조금 손을 봐서 재계약하면 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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