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지랖] 다락방, 계단 그리고 지하실
[영화 오지랖] 다락방, 계단 그리고 지하실
  • 이정배 (문화비평가)
  • 승인 2019.07.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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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문화비평가)
이정배 (문화비평가)

미국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소설 중의 하나가 앤드루스(Cleo Virginia Andrews, 1923~1986)가 쓴 소설 《다락방에 핀 꽃, Flowers in the Attic》(1979)이다.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2000)에서 ‘읽으면서 우리는 그렇게 쓰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배운다’는 네 권의 책 - 나머지 세 권: 《소행성의 광부들》, 《인형의 계곡》,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 중의 하나이다. 

소설 《다락방에 핀 꽃》은 영화로 두 차례 제작되었다. 1987년 소설과 같은 제목으로 제작된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다. 그 후 2014년에도 1권과 2권을 영화로 제작했지만, 우리나라에선 개봉하지 않았다. 아동 살해, 근친상간, 감금과 학대 등의 불편한 요소들이 소설과 영화 전반에 흐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서구인들의 ‘다락방’에 대한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 우리가 다락방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서구인들은 다락방에 대해 먼지 그득하고 잡동사니 잔뜩 쌓인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천국의 계단을 연상하게 하여 죽음과 연관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히치콕 감독은 이러한 영화문법을 잘 활용했다.

지하실과 땅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절대 유쾌하지 않다. 지하실 역시 음식을 두거나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나 공포 영화에 지하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영화 <야곱의 사다리>(1990)에서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등장하고, 주로 지하철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이러한 영화문법에 충실한 까닭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9)에 나오는 반지하 방이나 지하실보다 더 아래에 있는 방공호 시설은 대한민국만이 가진 독특한 공간인 것이 분명하다. 송강호 가족이 부유한 집에서 벗어나 끝없이 계단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가는 긴 장면은 자신들의 현실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격차가 얼마나 큰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영화 <기생충>이나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에 등장하는 계단을 오르는 장면은 신분 상승을 상징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영화가 계단의 상징성을 해석하는 데 있어 할리우드 영화문법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구 영화문법에서 계단을 죽음과 현실의 이분법으로 해석한다면, 우리 영화문법에선 계층의 갈등과 변화의 경계 공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2010)은 이러한 전통적인 해석을 거부하려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는 공간을 위아래로 구분하고 그 사이를 오르내릴 수 있는 도구로 계단이 사용되는 것을 거부했다. <인셉션>은 위아래라는 전통적 이분법을 의식과 무의식의 공간으로 대체했다. 뫼비우스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펜로즈 계단(Penrose stair)’을 사용하여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영화 <트랜센더스>(2014)에서도 계속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영화 <인터스텔라>(2014)를 통해 과거와 현재,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아예 무너뜨린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현대물리학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빌려와 기존의 이분법들을 무자비하게 해체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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