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나는 끝까지 농부로 남을 것이다
[人터view] 나는 끝까지 농부로 남을 것이다
  • 이은경 시민기자
  • 승인 2019.07.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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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탄리 농부 김태수씨

사북면에서 농사를 짓는 김태수 씨를 만났다. 초보농 사꾼이던 2007년 《연봉 5천이 부럽지 않은 귀농 : 무당벌레와 풀잠자리의 새낭골 귀농이야기》로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기농법의 필요성과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 농촌에서의 자녀교육 등을 말하며 희망을 주었던 그였다. 출간 이후 12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여전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가 살고 있는 고탄으로 향하는 길에 가벼운 소나기가 지나고, 산과 물이 초록빛에 들떠서 정확한 주소도 모른 채 고탄 정자에 도착했다. 전화 드렸더니 까맣게 타서 더 말라 보이는 호리호리한 김태수 씨는 식사 때를 놓쳤다고 했다. 부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순대국 한 그릇과 파전 하나를 주문하고 반주도 곁들이며 얘기를 나눴다.

김태수 농부.       사진 김예진 시민기자
김태수 농부.      사진 김예진 시민기자

“작년과 올해, 제가 네 집 살림을 해요. 아버지가 항암치료 받으시는데 거동이 불편하거든요. 장학사가 된 아내는 홍천으로 발령받고, 큰아이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고, 막내는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니 제가 혼자 돌보고 있죠. 교사이던 아내도 새로운 일을 맡게 되어 밤샘하는 일이 잦아 고3 아들 보살피기가 쉽지 않죠. 제가 일주일에 두 번은 저녁에 시내로 나가 아이 새벽밥 해주고 다시 들어와 부모님 살피고 수 천 평 되는 인삼밭과 멜론을 살핍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세 집, 네 집 살림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 10년째다. ‘연봉 5천’이 크게 부럽지 않은 것은 맞지만, 아이들의 교육과 병석의 노부모를 보살피며 농촌에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고스란히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 그럴 것이다. 일도 고되지만 마음도 여위어 갈 것 같았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잠시 쉬어가고요. 어쩌면 고된 일이 저를 잡아주며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지도 몰라요. 아이들 교육 문제로 가족이 떨어져 지내기 힘들기는 해도 일시적인 일이라 견디는 거죠.”

마침 비가 와서 여유롭게 인터뷰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점심 식사를 끝내자 황급히 멜론 밭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식물은 적절히 돌봐 주는 때가 중요하다. 일이 많다고 뒤로 미루기라도 하는 날엔 더 큰일이 기다리니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농사꾼에게 10년은 아무것도 아닌 세월이지만, 그 세월 동안 멜론을 지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단다. 멜론이 그만큼 예민한 작물이라서 다른 농사는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멜론은 꽃이 피었다 지는 때가 채 하루가 안 되기에 수정도 까다롭다. 여러 개 매달린 꽃 중 하나만 남기고 따줘야 한 주에 하나의 열매가 커서 품질 좋은 멜론이 태어난다.

그에게는 멜론보다 더 신경 쓰이는 인삼이 있다. 인삼은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투자가 들어가 최소 7년 후에야 수확이 이루어진다. 1년 농사인 감자는 3개월 만에 잘 되는지 안 되는지 결론이 나는데 인삼은 도지를 주고, 땅 관리하면서 일꾼 고용하고 농자재 구입과 기계 사용료 등 긴 시간 투자로 경제적 압박을 받는다.

“아내가 버는 돈은 아이들 교육비로 다 나가니 다른 농사를 지어서 필요한 돈을 막아야 하고 집에 내놓는 것은 없어 미안한데, 돈은 없고…. 인삼 농사 때문에 늘 돈으로 쩔쩔매는 날이 길어지니 농사짓다가도 틈만 나면 공사판에 막일을 하러 가기도 해요. 다행히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자신이 있어서 그것도 복이죠.”

서른다섯, 귀농에 대한 로망으로 시작했던 농촌 생활. 처음부터 이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새낭골에서 유기농 농사를 시작했을 때는 농사를 기획하면서 재미가 있었고 또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생활협동조합에 토마토를 납품하면서 회원제 운영을 했다. 전국에서 개인회원 직거래는 처음 시도했다. 1년에 얼마간의 돈을 책정해놓고 농산물이 나올 때 보내고 이상이 없으면 돈을 주는 후불제였다. 그래도 덜 보낸 사람은 없다. 약속한 품목을 보내지 않았으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미리 부연설명을 했다. 이 돈으로 생활하고 농사지었다. 처음엔 회원 50명이 목표였는데 나중엔 감당이 안 되었다. 누가 나가면 대기 중인 사람이 들어왔다. 그때는 농사짓는 일이 즐거웠다.

멜론은 꽃이 피었다 지는 때가 채 하루가 안 되기에 수정도 까다롭다. 여러 개 매달린 꽃 중 하나만 남기고 따줘야 한 주에 하나의 열매가 커서 품질 좋은 멜론이 태어난다. 사진 김예진 시민기자
멜론은 꽃이 피었다 지는 때가 채 하루가 안 되기에 수정도 까다롭다. 여러 개 매달린 꽃 중 하나만 남기고 따줘야 한 주에 하나의 열매가 커서 품질 좋은 멜론이 태어난다.       사진 김예진 시민기자

소통이 중요해요. 고객과의 소통이 신뢰를 주고 인연이 길어졌어요. 서로 약속한 대로 보내주고 항상 뭔가를 더 챙겨주고 잘 되면 덤으로 더 주며 8년 동안 했는데 가족 같았어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여러 작물이 필요해요. 토마토 수확 철에는 토마토를, 감자가 나올 때는 감자를, 고추가 필요할 때는 고추를 보내주어야 하는데 가족들이 타지로 나가 생활을 하니 도와주는 사람 없어 혼자 했죠. 여러 작물을 심고 거두고 택배와 같은 잡무도 많아 혼자 일처리하기가 어려웠어요. 너무 지쳐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둔다니 서운해 하는 분들이 많았죠.

그는 고탄에 먼저 자리 잡은 농민 활동을 하던 지인과의 인연으로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다. 이 고장은 다양한 활동으로 농촌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봄내살림을 설립하신 분이나 별빛학교를 운영하는 농촌 활동가, 귀농귀촌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같은 동네에 살지만 조금씩 방향성은 다르다. 농촌이라는 울타리에는 농부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탄은 농민운동의 본고장이라 할 만하다.

“요즘 ‘시골 가서 잘 살고 싶다’라는 말은 직업 구하러 온 것이지 농사지으러 온 것이 아니에요. 귀촌도 있고 귀농도 있고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형태의 다양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농촌에 ‘업’만 남고 ‘촌’이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점점 대규모 형태로 농업이 바뀌지만 그곳에는 아이들도 노인들도 직장인도 다 어우러져 살아야 합니다. 시골이 좋아서 무턱대고 귀농이나 귀촌을 하는 이들도 더러 있어 우리 집에다 춘천귀농지원센터를 열었어요. 제가 쌓은 농사 지식과 경험으로 토양과 지역에 맞는 품종을 선택해 농촌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농사 컨설팅을 하고 싶어서요. 실패를 거듭하며 체득하는 게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기본만 알아도 덜 실패할 수 있는데.”

태수 씨의 아들은 고3인데 농대에 가길 원한다고 했다. 농업이 마치 버려진 산업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몸으로 때우는 농사를 한 아버지가 이제는 아들에게 농사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수가 있다는 자신감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인생 1막 3장을 고민한다는 농부 김태수 씨.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자신 있다. 농사짓는 방법을 힘들게 배운 만큼 얻은 것도 많다. 그는 끝까지 농부로 남을 것이다. 

돌아가는 길, 모진강이 햇살에 반짝인다. 열심히 살아온 삶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농촌이 반짝이는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이은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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