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 (북한강포럼 회원)

이번 여행은 물과 관련된 여행으로 사단법인 북한강포럼에서 2018년 백두산 천지를 갔을 때 논의되었고, 지난 6월 28일 - 7월 5일 7박 8일 일정으로 몽골의 울란바타르, 러시아의 울란우데와 이르크츠크를 다녀오는 여정이었다.

헨티 산맥이 발원지인 톨강은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를 관통하여 저지대의 초원을 굽이굽이 흘러 셀렝게강으로 합류하여 울란우데의 동바이칼로 들어가며, 서바이칼의 리스트 비양카에서 앙가라강을 통해 북극해로 흘러나간다. 지도상에서는 울란바타르에서 울란우데, 울란우데에서 이르크츠크에 이르는 경로가 한 눈에 들어왔지만 막상 열차를 타보니까 먼 거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국립공원인 테를지의 여행자 캠프에서 1박하고, 다음 날 오후 울란바타르역에서 출발하는 국제열차를 타고 수흐바타르역, 나우쉬키역을 거쳐 6월 30일 새벽에 울란우데역에 도착하였다. 울란우데는 붉은 강이란 뜻이다. 22개 러시아 자치공화국 중의 하나인 브리야트 공화국의 수도이기도 하다. 바이칼은 브리야트어로 신의 바다라는 뜻이고, 투르크어로는 물고기가 풍부한 호수라는 뜻이다. 바이칼로 들어가는 336개의 강과 지류들 중 셀렝게강의 수량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 번 들어온 물은 400년이 되면 유일한 통로인 앙가라강을 통해 북극해로 빠져나간다.

레닌 두상, 개선문, 전승 기념탑 등 울란우데 시내를 구경하고, 버스를 타고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서있는 타이가 삼림지대를 2시간 동안 달려 동바이칼인 그램야친스키에 도착했다. 동바이칼에서 최고의 볼거리는 저녁 9시부터 시작되는 일몰 광경이었다. 

몽골인들은 이곳에 오면 서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몽골리안 부모의 땅, 바이칼 바다에 오다”라고 기도를 올린다.

울란우데에서 이르크츠크로 가는 밤열차를 타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이르크츠크에 도착했다. 이르크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린다. 파리의 바로크식 건축 양식이 남아 있는 고풍스러운 이 도시에는 데카브리스트의 역사적 한이 서려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알혼섬 샤먼의 의식(왼쪽), 몽골 테를지 여행자 캠프(위), 알혼섬 서낭 옆에서(아래).
알혼섬 샤먼의 의식(왼쪽), 몽골 테를지 여행자 캠프(위), 알혼섬 서낭 옆에서(아래).

1925년 이전까지 이르크츠크는 유배지였다. 특히 12월당이라고 일컬어지는 데카브리스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1825년 12월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그 원로원 광장에서 니콜라이 1세의 대관식에 맞추어 거사를 일으켰다. 러시아의 정치 개혁과 농노제 폐지를 주장하는 귀족 출신 청년 장교들의 반란이었다. 러시아에서는 12월을 데카브리라고 하는 까닭에 이 청년 장교들의 반란을 ‘데카브리스트의 난’이라 부르게 되었다.  

주모자 5명은 처형되었고, 116명은 이르크츠크로 유배되었다. 이 반란에 관련되었던 토르베츠코이는 6천km를 걸어서 이곳으로 유배되었다. 그들의 젊은 아내들과 약혼자들도 연인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중 상당수는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11명만 도착했다고 한다. 토르베츠코이의 아내 에카테리나 토르베츠카야는 남편이 있는 혹한의 광산 갱으로 찾아가 족쇄를 찬 남편의 차가운 발에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르크츠크에 들렀다면 우리 민족의 시원으로 알려져 있고 샤먼의 발상지인 알혼섬과 앙가라강을 통해 바이칼 바다가 북극해로 흘러가는 리스트 비양카를 꼭 가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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