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모 (‘칸트의 천국’ 회원)
양창모 (‘칸트의 천국’ 회원)

사람들은 자신의 정원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나도 그랬다. 1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았던 집의 정원을 제대로 걸어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부터 하루 한 시간씩 정원을 거닐면서 알았다. 거대한 바다였던 하늘이 어느새 한 폭의 수묵화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날 때. 날이 어두워질수록 밝아지는 강물을 따라 바람이 멀리서부터 아주 천천히 물결을 휘몰아갈 때. 가끔 저 강물 안에는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내는 걸까 궁금해서 강을 들춰보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 내게 서서히 스며들어오는 이 풍경들이 결국 나를 다른 존재로 바꿔놓을 것 같은 예감마저 들었다. 

아파트살이를 하고 있는 나에게 정원이 있을 리는 없다. 15년 넘게 쉼 없이 일해 왔지만 나무 한그루 심을 땅 한 평이 없다. 내 정원은 소양강변이다. 마음대로 내 정원이라고 생각한 소양강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정원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우리 집 울타리 안에 있지 않을 뿐, 몇 십 분만 걸어가면 아무런 조건 없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소양강은 분명 춘천시민 모두의 ‘나의 정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양강변으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매번 감탄을 자아내는 나를 보며 지인은 말했다. 풍경은 풍경일 뿐이라고. 우리의 실제 삶은 거기에 있지 않으니 풍경에 기대는 삶은 어쩌면 신기루 같은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우리가 일생토록 놓지 못했던 사람에 대한 믿음 같은 거야말로 어쩌면 신기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면 어쩌지 못하고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내가 이번 생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정원이 이제 사라지려 한다. 소양강의 아름다움은 그 건너편에 말없이 앉아있는 중도라는, 아름다운 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곳에 레고랜드라는 놀이공원이 들어서면 나의 소양강은 없어질 것이다. 우리들의 정원을 망가트리면서 정치인은 일부 상인들의 표를 얻고 건설사는 돈을 번다. 그들이 내게 빼앗아간 것은 돈이 아니다. 내 땅도 아니다.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싸우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세상은 한꺼번에 망가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권리의 주머니가 털리는 것을 방관하고 한 사람의 소중한 장소가 쉽게 파괴되도록 내어주면서 야금야금 찾아온다. 사랑만 할 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런 싸움도 하지 못한 나와 같은 ‘한 사람’ 때문에 세상은 이런 모습인 것이다. 도청 앞에서 벌써 일주일을 넘기며 레고랜드를 철회하라고 단식을 하고 있는 또 다른 한 사람을 생각하며 나는 이런 반성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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