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아이의 생일. 우리는 가능한 한 당일에 축하를 한다. 소박한 생일상은 제철 과일 한 가지와 그 계절의 꽃, 그리고 떡 케이크와 생일 초로 차린다. 생일상에 놓였던 꽃은 엄마에게 가는 꽃다발이 된다. “사랑스러운 00의 엄마, ☆☆☆님의 아름다운 삶을 응원합니다.” 뜻밖의 꽃다발을 받은 엄마들은 행복으로 마음이 꽃처럼 밝아졌음을 고백하곤 한다.

생일 맞은 아이가 있을 때마다 들르는 꽃집이 있다. 언제나 방글방글 밝은 얼굴의 꽃집 주인은 풍성한 꽃다발이 아닌 소박한 꽃 한 줌에도 정성과 웃음을 섞어 묶어 주신다. 큰 도로와 로데오거리 사이에 자리한 그 꽃집 앞뒤에 있는 싱싱한 율마와 화분에 담긴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길 가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한다. 지인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오가는 사람들도 식물들 보고 기분 좋으라고 일부러 밖에 두신 거란다. 

며칠 전, 한 아이의 생일을 축하할 일이 있어 꽃집에 들렀다. 고른 꽃 외에도 초록 식물 몇 줄기를 섞어 묶어 주셨다. “근데 사장님! 길가에 화분들 두면 혹시 없어지거나 하진 않나요?” “음 ~ 글쎄요. 없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큰 화분은 무겁기도 하고…. 작은 화분들도 다 그대로예요. 꽃은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가볍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날 점심 식단에 오이무침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식단이라 고춧가루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오이무침이 보였다. “조리사님이 교사들 먹으라고 따로 하셨대요.” 혼자서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식단은 아이들 중심이고 교사들을 위한 음식을 따로 계획하진 않는다. 그런데도 조리사님은 가끔 이렇게 교사들을 위해 따로 손을 한 번 더 써 주신다. 그날처럼 두 종류의 오이무침을 하거나 닭볶음탕을 두 가지로 만들어 주시기도 한다. 편한 것 생각하면 이 더위에 한 가지만도 버거울 일이다. 조리사님은 고춧가루 들어간 오이무침에 감격하여 고마워하는 교사들에게 말씀하신다. “에이, 그까짓 거 뭐라고. 맛있게들 드시면 내가 좋지.” 

어린이집 주변에 작은 공터들이 있다. 잡초가 무성했을 그곳에 올해는 다알리아, 해바라기, 백일홍, 금송화, 풍선초가 한창이다. 새 공간을 꾸미고 적응해가던 봄날 교사들은 너나없이 꽃씨를 가져와 모종을 냈다. 덕분에 아이들은 씨앗을 심는 것, 싹이 나고 모종이 되는 과정, 봉우리 앉고 꽃이 피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놀이터를 방문하는 초등학생들도 꽃밭 가에서 놀고, 노인정 어르신들도 봄, 여름내 꽃을 보신다.

가물었던 늦봄, 초여름, 아침이면 부지런한 김 선생님이 더 일찍 출근해 물 주는 모습을 늘 보곤 했다. “선생님~ 아이들 돌보시는 것만도 힘드신데 일찍 출근해 꽃밭까지 돌보시니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오늘은 풍선초 덩굴이 올라가게 줄을 묶어 주었어요. 아이들도 좋고 저도 꽃을 보면 좋고, 즐거워서 하는 일인 걸요.”

오늘 교사들의 아침 모임 시간, 김 선생님은 아주 작은 씨앗 하나씩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풍선초는 씨앗도 너무 신기하고 예뻐요.” 팥알보다도 작고 검은 그 씨앗에는 흰색 하트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김 선생님의 사랑을 한 알씩 선물 받은 것이다, 벅찬 감동과 함께. 그림책 미스 럼피우스의 주인공은 주머니에 꽃씨를 넣어 가는 곳마다 뿌리고 다니며 온 세상을 루피너스꽃으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든 것이다.

리베카 솔닛의 말이 떠오른다. “희망은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는 전망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게 바로 희망이죠.” 밝은 소식보다 마음 무거운 소식이 더 많은 시절이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나와 내 이웃에게 기쁨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작은 일,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그 일을 찾아 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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