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도 깊은 산중. 정선의 시골마을이 나의 고향이다. 홍천 내면이 고향인 형부가 처음 처가댁을 방문했을 때 ‘시골망신’, ‘머털도사 사는 동네’라고 놀릴 정도로 오지였다. 마을엔 시내버스가 들어오거나 슈퍼가 생긴 적도 없다.

전기는 약 45년 전쯤에 들어왔다고 한다. 6형제 중 냉장고와 TV가 집에 있을 때 태어난 형제는 내가 유일하다. TV 채널은 KBS1만 나왔다. 그마저도 태풍이 몰아치면 안테나가 흔들려 볼 수가 없었다. 들장미 소녀 ‘캔디’와 ‘빨간 머리 앤’ 같은 히트 만화는 당시 MBC가 나오지 않아 볼 수 없었던 것이 오히려 추억이 됐다. 

태풍이 수시로 몰고 온 ‘정전’에는 모두가 초연했다. 그런 날 밤이면 이상하게 공부가 하고 싶어져 평소 안 보던 책을 촛불 아래로 내밀었다가 할머니에게 ‘찰진 등짝 스매싱’을 당하기도 했다. 

1990년대 말부터 전국적으로 휴대폰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반엔 우리 마을도 ‘스피드 011’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KT에서 제공하는 016, 018로 시작되는 번호와 LG의 019 번호는 기지국이 세워지지 않아 통화가 불가능했다. 이 통신사에 등록된 핸드폰을 들고 고향을 방문하면 저절로 “잠시 꺼두어도 좋습니다”라는 캠페인에 동참하게 됐다. 

한여름의 어느 날, 타지로 나가있던 모든 형제들과 가족들이 집안의 전통처럼 고향집에 모여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휴가 마지막 날 직장에서 급한 연락을 기다리던 작은언니가 갑자기 초조해 하며 016으로 시작하는 번호의 핸드폰을 하늘방향으로 치켜들고 수신 신호가 잡히는 지점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동네어귀에 서면 핸드폰 수신 신호가 가끔 잡히더라’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여덟 살 조카를 불렀다. 

“어진아, 고모 핸드폰을 들고 저기 나무 아래 가서 서 있어봐. 거기는 핸드폰이 터진대, 내가 집전화로 한번 걸어볼게.”

핸드폰을 들고 나무쪽으로 향하던 조카가 갑자기 마당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고모를 향해 큰 소리로 질문했다.

“고모, 나무 아래 가면 핸드폰이 터진다고요?”

집안 거실에서 유선전화기를 들고 다급하게 번호 누를 준비를 하던 조카의 고모는 마당에서 서성이는 조카에게 조금은 짜증 섞인 말투로 소리쳤다.

“어, 그래 터져. 그러니까 빨리 저~ 기 나무 아래로 들고 가봐”

“진~짜 터져요?”

“그래! 진짜 터진다고!”

그러자 조카는 팔을 쭉 내밀어 엄지와 검지 손끝으로 전화기의 안테나 끝을 잡았다. 사색이 된 얼굴로 울까말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내가 핸드폰을 받아들자 조카는 쏜살같이 도망쳐 집 뒤편으로 숨어버렸다. 핸드폰이 터질까봐.

그 이후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는 고향마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핸드폰이 안 터져 연락을 못했다’라고 핑계를 댈 수 있었던 마지막 보루 같은 곳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2차선 도로가 포장됐고 인터넷도 들어왔다. 수백 개의 IPTV채널에 익숙해 질 때 쯤 친정아버지는 홈쇼핑에서 ‘안사면 후회한다’는 말에 쓸데없는 물건을 사게 되는 부작용도 경험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15년도 안 된 일이다. 핸드폰이 터질까 도망가던 조카를 기억할 때면 통신업계가 얼마나 빠르게 변했는지 새삼 피부로 느끼게 된다.

정리 | 유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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