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풀뿌리가 눕는다!!! 풀의 뿌리가 박힌 곳과 풀이 눕는 땅은 어떤 땅이어야 할까? 머릿속 추론이지만, 풀이 민중·백성·국민이라면 뿌리는 제도이다. 민주주의라는 땅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풀이라야 누워도 바람을 이길 수 있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 설수 있다. 민주주의 영토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에 눕는 풀.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그리고 인간의 의지를 지속하기 위해 지방자치 제도를 설계했다. 단체장을 뽑은 후 주권자의 권한을 위임하는 ‘단체자치’. 이는 일정한 지역을 기초로 그 지역의 자치기구가 자율성을 가지고 관련 지방 사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풀뿌리가 굳게 내릴 좋은 토양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단체 자치는 주민들의 직접적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는 아니었다. 

지난 20년이 넘는 동안 단체자치의 폐단이 많았다. 지금도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지방정부와 의회는 자신이 주인인 양 행세하는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주권자인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는데 인색했다. ‘관리’라는 관 우월 의식과 ‘대표’라는 우월감을 버리지 못했다. 이러한 자격 없는 사람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지방자치제도 자체 설계의 허점도 있었다. 본래부터 주어진 주민들의 고유하고 본질적 권한과 직접적인 참여에 기초한 자치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잘 작동될 수 있느냐의 여부, 즉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 제도의 작동 여부를 놓친 것이다. 풀이 안정적·지속적으로 뿌리박고 살기 위한 ‘좋은 흙’이 가미된 더 좋은 땅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굳이 법률적 용어로 바꾸면 단체자치에 주민자치가 가미된 제도가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풀이하면 민(民: 백성)이 주(主: 주인)가 되는 주의(主義: 사상과 제도)이다. 그러므로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역의 주민(主民)들이 주인이고, 그들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다. 자발적 참여에 기초한 자기 통치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단체자치에 주민자치를 가미하거나 궁극적으로는 주민차치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자치의 본질이다.

현재 읍면동은 행정계층이다. 자치계층이 아니다. 기초자치단체장이 읍면동의 장을 임명한다. 행정구역일 뿐이다. 각 구역의 거점 공간은 주민자치센터다. 익숙한 명칭인 동시에 장소이다. 주민자치 실현을 위해 1999년부터 읍면동에 주민자치센터를 도입했다. 자치를 위한 거점 공간인 센터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주민자치 기능강화보다는 복지서비스 전달과 단순 오락 및 프로그램 실시 공간의 성격이 더 강했다. 단순 행정기관이 있는 센터로 방치했다. 센터에는 자치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지 않았다. 주민자치센터의 주민자치위원회는 대표성, 자치역량, 적극적 활동 의지 등의 부족으로 읍면동장의 자문역할에 머물렀다. 단체자치를 실시할 때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점차 성숙해 나가고 있듯이, 이제는 주민자치센터의 성격도 전환하고, 진정한 지방자치가 실현되도록 설계해 나갈 단계이다.  

춘천시는 24개 주민자치센터의 성격을 바꾸고,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퇴계동과 근화동은 주민자치회로 전환하여 시범적 운영이 진행되고 있다. 후평1동, 후평2동, 신사우동, 석사동, 강남동, 신북읍도 주민자치회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주민자치회와 관련된 다양한 운영 모델도 논의 중이다. 어느 운영 모델로 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춘천시- 읍면동-마을자치지원센터-사회혁신센터(지역대학 포함)-지역주민 간 운영 주체들의 유기적인 네트워크와 노력이다. 그 중에서 단연코 마을자치의 주체인 마을주민이 가장 중요하다. 읍면동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있다면 진정한 지방자치의 한 축인 주민자치가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춘천시가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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