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요 (호반초등학교 교사)
남지요 (호반초등학교 교사)

민주시민교육이 새로운 키워드가 된 것만 같다. 교육에 유행이 있다고 말하면 웃긴 이야기이지만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수의 관심사가 한 곳에 모이기도 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정의와 공적 현실에서 마주하는 정의가 일치하지 않는(김만권)’ 상황에서 우리는 때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민중의 힘을 기대하기도 한다. 민주시민교육이 화두가 된 것은 우리의 사회적 경험이 깨어있는 시민의 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연결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민주시민교육에 관해 합의된 안을 도출해내지는 않았지만, 민주시민교육이 지식의 전달로 가능한 것이 아님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삶의 양식이다. 민주적 삶의 경험이 시민을 길러낸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제목을 단 어떤 교육활동 이전에 학생들이 살아가는 곳이 민주적 구조와 문화로 충만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민주시민이 숨 쉬고 생활하는 토양이 되고 있을까? 

학교와 교실의 모습을 돌아보면 그곳을 좋은 토양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민주적 행위라고 믿고 있는 어떤 것들이 오히려 한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학생자치’는 대표를 뽑는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학기 초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을 겪고 나면 뚜렷한 방향과 내용 없이 그 정체를 잃고 만다. 무언가 활동이 생겨나도 대표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치거나 대다수의 학생들이 활동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왜 대표를 뽑고자 했는지, 대표의 역할은 무엇인지 논의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자치’는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해당 없음’의 영역이 되어버린다. 반장은 ‘공부 잘하는, 인기 많은, 말을 잘하는’ 이라는 수식어를 단 탁월한 누군가의 몫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반장, 회장 선거가 중심에 놓인 지금의 학생자치는 주체성을 상실한 학생들의 출현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지금도 누구나 학급 혹은 학생 대표가 되겠다고 나설 수 있다. 기회가 제한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속을 파고들어가 ‘정말 누구나 반장이 될 수 있어?’라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교육은 경쟁과 선발 속에 끊임없이 자신의 탁월성을 증명해 나가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다보니 우리 중 대표를 뽑는다면 능력 있는 누군가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민주주의인지, 그 경험 속에서 주변인 혹은 비주체로 자신의 역할을 선 긋게 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민주시민이란 존재가 얼마나 멀게 느껴질지 고민해야한다.

교실에서는 무언가를 함께 결정함에 있어 ‘다수결’이라는 방식을 굉장히 자주, 많이 선택한다.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모두의 의견을 묻는 형식은 갖추고 있지만, 몇 가지 선택지를 놓고 손을 들어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서로의 다른 생각에 대한 질문과 이해가 불가능해져만 간다. 주류에 포함되지 못하는 생각들은 더 쉽게 좌절되고 마는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손 들고 몇 명인지 확인하고 결정에 따르면 되는 빠른 과정에 익숙해지다 보면 논쟁, 설득, 타협의 과정이 번거로운 것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 크게 마음먹어야 해낼 수 있는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다수결’이라는 방식의 빈번한 사용이 숙고할 수 없는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돌아봄이 필요한 순간이다.

‘지금, 여기’의 민주적 삶이 부재한 상황에서 민주시민이 나타나길 기대하는 것은 메마른 토양에서 식물이 열매 맺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 지금 우리에게는 보다 정교화된 민주적 경험이 필요하다. 교실이 ‘너’와 ‘나’가 동등하게 만나는 곳이길 기대한다. 교육이 탁월함의 증명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가능성을 열어내는 해방의 과정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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