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을 꿈꾸는 사람들] 요선동 권영돈 씨 편 - ②요선동에 정착한 재단사
[도시재생을 꿈꾸는 사람들] 요선동 권영돈 씨 편 - ②요선동에 정착한 재단사
  • 홍석천 기자
  • 승인 2019.08.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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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에게 50만원을 빌려 요선동에 ‘리버티’라는 맞춤 전문복점을 차렸지"

‘도시재생을 꿈꾸는 사람들’은 교동, 근화동, 소양동, 약사명동의 옛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과거의 조각을 모으고, 오래된 도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늠하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는 춘천시 사회혁신센터와 함께합니다.

서울에서 양복 만드는 실력을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고 나이도 들고 해서 누님에게 50만원을 빌려 맞춤전문복점을 차리려고 왔어. 요선동에 ‘리버티’라는 이름으로 작은 가게를 냈지. 와서 보니 양복점은 벌써 몇 개 있더라고. 그래서 맞춤전문복점을 열었어. 처음에 명동에서 육림극장 올라가는 곳에 가게를 낼까, 요선동에 낼까 고민을 했었어. 그때 당시만 해도 요선동이 훨씬 괜찮았었어. 유동인구도 많고, 도청도 가깝고 해서 요선동에 냈어. 주로 와이셔츠하고 바지를 만들었어. 와이셔츠를 맞춰 입는다는 개념이 없을 때야. 몸에도 안 맞는 와이셔츠를 그냥 입고 다녔는데 내가 딱 맞게 재단해 주니 인기가 좋았지. 그러니 잘 될 수밖에. 동대문에 원단을 끊으러 다녔는데 총알택시 타고 다녔어. 직원도 2명이나 두고.

요선동에서 양복점 영업을 왕성하게 하던 시절의 권영돈 씨

그때 같은 미림라사 본점에 다니던 사람도 내가 오고 몇 달 있다가 춘천에 와서 양복점을 열었어. 완전히 같은 건 아니었지. 그쪽은 양복점이고 우리는 중간복이라고 할까. 약간 평상복 같은 걸 만들었으니까. 그 사람도 돈 많이 벌었어. 전라도사람인데 돈 벌어 명동에 건물도 사고했으니까. 나도 적지 않게 벌었지. 사실 회사 다닐 때 받은 월급도 적은 돈은 아니었어. 공무원 월급 1만2천 원씩 탈 때 숙식 제공받고 1만8천원씩 탔으니까. 그래도 부모님 좀 부쳐드리고 하면서 목돈은 못 모았지. 부모님 환갑에 신앙촌 담요 같은 것도 해드렸어. 신앙촌 담요라고 알아? 그때 유행이었는데 아주 비쌌어. 몇 만원씩 했다고. 그렇게 회사 다니면서는 돈을 모을 수가 없겠더라고. 누님한테 돈을 빌린 거지. 처음 차린 거고 하니까 좀 허술한데도 있었어. 그런데 춘천사람한테도 이런 옷가게는 처음이란 말이야. 장사가 잘 됐지. 학생부터 좀 껄렁껄렁한 치들까지 안 온 사람이 없어. 와서 옷만 맞추고 돈 떼먹은 놈들도 있었어. 지금 내가 이렇게 늙었지만 아직도 길가다 만나면 다 기억하고 있어. ‘저놈 내 돈 떼먹은 놈’ 하면서 말이야. ㅎㅎㅎ 악착같이 받지도 못 해. 내가 맘이 약해서…, 외상 거절도 잘 못하고.

서부시장 쪽으로 하꼬방도 많고 양색시도 빼곡했지. 지금 독일빵집 옆에 피앙세라고 있었고 그 옆에도 술집이 하나 있었어. 미국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던 곳이었어. 양색시하고 비슷한 여자들이 많았어. 춘천여자들이 아니라 돈 벌려고 전국에서 모여든 여자들이었지. 남촌이라는 유명한 요정도 하나 있었어. 예쁜 아가씨들이 아주 많았어. 마산에서 온 캔디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되게 예뻤어. 그런 사람들도 다 우리 집에서 옷을 맞춰 입었어. 기존의 양복점들과는 달랐으니까. 젊은이들 취향에 맞는 최신식 옷을 만들었거든. 맘보바지같이 딱 붙는 옷도 만들고 했어. 매일같이 우리 집에 와서 담배피고 노닥거리고 그랬어. 밥도 많이 사주고 유대관계를 가지니까 자주 왔지. 미군들도 데려와서 옷 맞추고. 내가 오기 전에만 해도 시장에 가서 아버지들이 입던 헐렁한 점퍼 같은 것만 사 입다가 이런 게 들어오니까 춘천의 웬만한 젊은 애들은 다 왔지. 80년대까지는 인기가 있었어. 미군들이 조금씩 돌아가고 양색시도 줄고 유행이 지나면서 나이가 좀 있는 아줌마들 옷을 만들었지.

10년 만에 돈을 벌어 살던 건물을 샀지. 20평짜리 세 칸인데 6천만원에 샀어.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 건물주한테 나보다 8살 어린 춘여고 나온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건물주가 불러서 자기 딸이랑 결혼하래. 그럼 건물 그냥 주겠다고. 그런데 나도 당시에는 주머니에 돈푼께나 넣어 다닐 때라 처갓집 덕보고 살 건 없다 싶어서 말았어. 앞집 과자점 할머니도 중매를 섰었어. 집이 다섯 채나 있던 집이었는데 그때도 말았어. 그 아가씨가 아직도 춘천에 왔다 갔다 해. 돌아다녀. ㅎㅎㅎ 인기가 좋았어. 우리 가게 오는 손님들은 다들 중매 서려고 했어. 선도 몇 번 보고 연애도 몇 번 하고 했지. 미스 강원 나온 여자도 있었는데. 지금은 미국 가서 살아. 집사람하고 결혼한 이야기도 재밌어. 춘천에 와 있을 때 서울 거래처 아주머니가 중매를 해 줬어. 서울 아가씨래. 아현동 어디에서 만났는데 그냥 한 번 보고 서로 그냥 말았어. 그리고 춘천에 와 있는데 또 계하는 아주머니가 중매를 선거야. 그래 만나보니 아현동에서 만났던 그 아가씨야. 똑같은 아가씨를 두 번이나 만난거지. 그래서 이건 인연인가보다 하고는 결혼했어. 신기하잖아? 아내도 서울에서 양장점을 했었어. 그래서 결혼을 하고 춘천으로 와서 우리 가게에도 본격적으로 여성복을 만들기 시작했지.

홍석천 기자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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