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김성태, 이흥렬, 현제명…대표적 친일 작곡가
도교육청, “교가 개정에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

지난 3월부터 운영한 ‘학교 안 일제 잔재 청산 신문고’를 통해 도내 10개교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음악가가 작곡한 교가가 확인됐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번 달 6일까지 강원도도 초·중·고 635개교를 전수조사한 결과(응답 560교, 무응답 75교, 무응답의 경우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교가 작곡가 및 작사가 확인, 작가 미상 85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음악가인 김동진, 김성태, 이흥렬, 현제명이 작곡한 교가가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고파〉로 유명한 김동진(일본식 이름, 金森東振)은 1942년 1월에 열린 신징교향악단 정기공연에서 일제가 세운 만주국을 찬양하는 교향곡 〈만주에 의한 찬가〉 등의 음악을 다수 연주했으며 ‘대동아전쟁의 의의를 철저하게 관철시킬 가요 등을 보급하려는 목적’으로 만주작곡연구회가 설립되자 회원으로 가입했다. 1942년 6월에는 만주작곡연구회 제1회 발표회에 자작품 가곡 3곡을 발표하여 신징방송국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다.

<동심초>로 유명한 김성태(일본식 이름, 金城聖泰)는 1941년 9월 조선총독부가 내선일체와 농업보국을 실천하기 위해 내지의 농촌에 파견되었던 반도청년들의 활약상을 담은 문화영화 <농업보국대>에서 작곡과 지휘를 담당했다. 라디오로 방영된 <아세아의 힘>, <기쁘다 마닐라 함락>, <태평양행진곡> 등을 지휘했으며 일본군에 입대를 장려하는 <국군의 어머니>, <어머니의 희망> 등의 곡을 직접 작곡하기도 했다.

<바위고개>로 유명한 이흥렬(일본식 이름, 直木興烈)은 1938년 ‘음악으로 내선일체를 실현’하자는 목적으로 결성된 경성음악협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삼천리사가 《삼천리》 1941년 4월호에 기획한 ‘조선음악학교설치론’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음악이 새 시대에 요구되는 문화인의 예술이 되고, 비상시일수록 음악을 통해 국민정신 지도상 중대한 역할이 있음을 사변 발생 이래 확인했으므로 시국에 맞는 음악활동을 위해서도 음악학교 설치가 시급”하다는 글을 썼다. ‘반국가적 음악을 구축하고 일본음악을 수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된 대화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향생각>, <그 집 앞>, <나물 캐는 처녀> 등으로 유명한 현제명(일본식 이름, 玄山濟明)은 1937년 5월 창립된 친일문예단체인 조선문예회 위원으로 참여해 활동했다. 1938년 6월 대동민우회에 가입하면서 조선 민중의 행복은 내선 일체를 통해 대일본 신민이 되어 신동아건설에 매진함에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음악을 통해 내선일체를 굳게 하자’는 취지로 경성음악협회를 결성할 때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간사로 취임했다. 1942년 1월 ‘국민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경성대화숙이 주최하고 경성일보사가 후원한 ‘군가와 강연의 밤’에 출연해 군가를 불렀다. 같은 해 《동양지광》에 특집으로 실린 <싱가폴 함락에 부쳐>에서 ‘싱가포르 함락의 감격으로 새로운 대동아를 건설하고, 세계질서를 확립하고 새로운 세기를 건설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새로 교가를 제정하는 학교에 작곡료를 지원하는 등 개선을 위해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알렸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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