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던 한국계 외교관인 척 박(Chuck Park)이 사표를 던지고는 워싱턴포스트(WP)에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사임의 변을 기고했다. 막 결혼했고 조금은 이상주의적이었던 스물여섯 살부터 외교 일선에서 10년간 일했다는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현실안주 국가(The Complacent State)’의 일원임을 더는 정당화할 수 없어 사임한다”는 제목의 글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예외적인 위치에 있다(American exceptionalism)는 믿음을 심어준 대통령에게서 영감을 받아 공직에 들어왔고 미국적 가치라고 생각한 자유, 공정, 관용의 확산을 위해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미국 내에서의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외국 측에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르면서 점차 방어적인 입장에 몰리게 되는 현실과 트럼프 행정부가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비자를 거절하고 국경 안보·이민·무역 등의 현안에서 행정부의 지시사항을 그대로 따라야만 했던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일곱 살이 된 아들에게 트럼프 정권의 행위에 자신이 순응한 데 대해 설명할 수 없고 스스로도 정당화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그의 태도는 밀레니얼 세대의 전형을 보여준다. 현재 미국의 성인층 인구에서 최대 분포를 점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는 X 세대의 뒤를 잇는 인구집단으로서 밀레니얼스(Millennials) 또는 Y 세대로도 불린다.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부모의 자녀인 베이비붐 에코 세대(echo boomers)다. 그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불경기, 중도좌파에 대한 실망을 경험했으며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학생 시절에 이미 큰 빚도 떠안았다. 보편적 인권의 문제와 윤리적 소비에 공감하고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소통에 익숙하다.

갤럽(Gallup)에 따르면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자본주의(45%)보다 사회주의(51%)에 더 호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업의 성공은 돈이 아니라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로 측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재원으로 복지를 펼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이상적으로 본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 그렇듯 밀레니얼 세대 또한 그들을 둘러싼 문화를 새로 쓴다. 

일본이 기술 패권을 무기로 경제도발을 일으킬 때 반일(NO JAPAN)을 외치며 광장에 모여 감정을 분출하는 세대와 달리 그들은 일본인이나 일본 문화 전체가 아니라 경제 보복을 주도한 아베 정권에 반대(NO ABE)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관청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오전에 내걸었던 깃발을 오후에 내리도록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세대의 보이콧 참여의지가 크게 꺾인 데 반해 그들은 일본의 경제도발 강도가 높아질수록 생활 속 반일 실천을 자발적인 놀이 문화처럼 확산시키며 응전 수위를 높여갔다. 베이비 붐 세대가 시작한 항일 운동의 주도권이 밀레니얼 세대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일본의 실수는 어쩌면 치명적일지 모른다. 일본 문화에 친숙하고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서 과거 세대로부터 역사의식을 의심받던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에게 ‘일본은 나쁘다’는 인식을 아베 정권 스스로가 가르쳐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한민국을 향한 아베의 공격 명령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진화된 IT강국의 젊은 세대에게 최소한 1백 년의 반감기를 지닌 ‘반인도적 일본’의 민낯을 보여준 전략적 패착으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100년 전에 일어난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밀레니얼 세대의 결기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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