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공유가치창출디자인연구소장)
김윤정 (공유가치창출디자인연구소장)

고교시절 활동했던 봉사동아리에서 방문하던 한 보육시설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아이들이 자꾸 거리를 두고, 더러는 거칠기도 해서 참 다른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수많은 봉사자들이 과자봉지와 선물을 주곤 잠시 머물다 가는 짧고 낯선 경험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가 어려운 구조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봉사한답시고 대단하게 뭐라도 베푸는 것 마냥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자칫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몇 차례 더 찾아가고, 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머물면서 한 꼬마친구와 파트너로 지냈다. 다섯 살 남짓으로 기억되는 이 친구는 어릴 때 입소를 해서 엄마 품을 참 그리워하는 아이였다. 가까이 오지도 않던 녀석이 얼굴 익었다고 살며시 와서 손을 잡고 화장실 가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나를 이끌었을 때 참 고마웠다. 내내 인정받지 못한(?) 듯한 어려운 산을 한 고비 넘긴 것 같은 느낌이었을까? 흔쾌히 화장실을 데려가 볼일을 보고, 바지도 입혀주고…, 몸을 낮춰 옷매무새를 고쳐주는데 불쑥 아이가 입에 물고 있던 알사탕을 손으로 꺼내 내 앞에 들이밀었다. 

‘윽~! 먹던 사탕인데, 어쩌지? 동생이 침 묻힌 과자도 싫어하는데…,’ 난감했던 짧은 순간의 망설임과 동시에 입이 벌어졌다. 내 입에 사탕을 넣어준 아이는 얼른 내 목을 껴안고 좋아라 했다. 그 느낌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 사이를 한 꺼풀 벗겨준 기억으로 남아있다. 오후 햇살도 들이비친 화장실에서 다섯 살 꼬마와 마음이 통한 그 순간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사탕 한 알이 어떤 의미였는지 지금도 종종 떠올린다.

이번 민들레 124호에서는 청소년들의 아픈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공부를 잘하는 청소년은 공부만 하다 보니 자신의 모습이 없다는 사실에 힘들어했고, 공부를 포기(?)했다는 청소년들은 이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는 공감대열에 합류하며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단다. 성적을 떠나 자해를 통해 청소년기의 답답함과 불안함을 해소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도 한다. 

소위 ‘중2병’으로 이야기되는 시기에 놓인 청소년들은 여러 어려움을 토로한다.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심리적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우리 사회가 어느새 ‘현상’을 넘어 ‘병’으로 여기는 것도 이들의 어려움을 부추기는 셈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생으로 자신을 소개한 친구의 글이 마음을 울렸다. 그동안 맺힌 것이, 힘들었을 것이 너무나 생생하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아서였다. 

“중2병에 걸렸다고 비웃고 놀리면서 내팽개치거나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어디에도 안정적으로 기댈 수 없는 현실이 과연 왜 그런지 생각해 달라. 우리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으며 함께 살아나가려고 노력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중2병 걸린 미성숙한 청소년’이기 전에 모두 자신만의 생을 지닌 고유한 ‘사람’이니까.”

만들어진 사회구조에서, 보고 배운 어른들의 모습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소년들이 반기를 들 수 있기를 응원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리고 거침없이 목 놓아 울 수도 있길 바란다. ‘사람’과 ‘사람’으로 눈을 맞추면, 마음을 달래주는 누군가의 마음이 모든 것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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