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명 (별빛지역아동센터 생활복지사)
박찬명 (별빛지역아동센터 생활복지사)

별빛을 수료한 아이들이 얼마 전 마을을 다시 찾았다. 이른바 ‘홈커밍 데이’라는 이름으로 해마다 날을 정해 1박 2일로 모이는 연례행사다. 이렇게 표현은 간단하지만 중·고등학생 아이들이 20여 명이 모이면 으레 또 ‘일’이 되기 마련이다. 몸은 어른만큼 성장했지만 아직 아이들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챙겨야 할 것들이 의외로 많다. 선생님들은 며칠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홈커밍데이를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눈빛이었다. 이런저런 행사로 지칠 대로 지친 기색이 완연했는데 눈빛만큼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두근두근 설레는 눈빛. 추억에 잠기는 눈빛. 나는 별빛에 온 지 몇 해 되지 않아 이번에 오는 수료생 아이들을 거의 알지 못하고 내가 별빛에 있는 동안 수료한 아이들은 오지 않아서 어떤 느낌인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내가 처음 별빛에서 맡은 일은 기숙사 사감 일이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유학 온 남자아이들을 기숙사에서 돌보는 일이었는데 미혼 남성인 내가 남자 초등학생 7~8명 돌보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사감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번 ‘홈커밍데이’ 모임을 보면서 문득 ‘내가 돌본 기숙사 아이들도 이렇게 돌아와서 옛 추억을 곱씹으며 밤을 지새우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아이들에게 지나가듯이 너희도 나중에 여기 놀러 올 거야? 하는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기대와 다르게 ‘놀러 올 거예요’부터 ‘내가 왜?’까지 다양한 반응들이었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아마도 기분이 좋았던 것은 내가 아이들과 지내는 방식이나 내용이 크게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안심 때문이었고 섭섭했던 것은 내가 몸과 마음을 쏟은 것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도시의 많은 것들에 다시 빠져들게 될 아이들이 별빛으로 잠시 돌아오게 하는 일은 나의 몫이자 별빛의 몫이다.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일, 다시 보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 속에 남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아이들과 함께 별빛에서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옹기종기 그때처럼 모여 앉아 사진을 열어보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온다. ‘나한테 왜 그래요~’, ‘저거 나 아니야~’, ‘그만 넘겨요~’, ‘와~ 진짜 살 많이 빠졌다~’, ‘너무 귀여워~’ 등등. 진행하는 선생님이 사진 속 시간, 장소,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 더욱 그때 그 시절의 시간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바깥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학교 산책을 하겠다고 나섰다. 바뀐 풍경을 얘기하며 학교를 찾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지금 별빛 아이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 

거짓말같이 빠르게 ‘홈커밍 데이’가 끝나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듯 센터에는 다시 꼬마 아이들로 북적이고 익숙한 하루하루가 자연스레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 자연스러운 흐름 곳곳에 흔적을 남기며 다시 ‘홈커밍 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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