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사막의 맨해튼(The Manhattan of the Desert)으로 불리는 예멘의 시밤(Shibam)은 153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 덕분에 ‘여러 층 건축물을 토대로 한 도시 중 가장 오래되고 우수한 곳’으로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수직(vertical) 건축을 원칙으로 건설된 최초의 도시다. 진흙에 지푸라기를 섞어 벽돌처럼 만든 어도비(Adobe)로 집을 짓는 전통이 1천 년이 넘도록 이어져 왔으며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6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500년에 가까운 5~16층에 달하는 아파트 500여 동에 지금도 7천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데 부럽기 한이 없다.

이론적 강도가 100년에 가깝다는 철근과 콘크리트로 짓는 대한민국의 아파트가 예멘의 진흙 벽돌 공동주택보다 오래가기는커녕 평균수명이 27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어떤가? 독일의 공동주택 평균 사용연수가 121년, 미국이 72년, 영국이 128년인 것에 비교할라 치면 창피함도 사치다. 

물론 콘크리트의 이론적 강도가 100년에 가깝지만 동남아처럼 습한 지역에서 그것도 철저한 시공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고, 4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기후 특성상 콘크리트 강도가 현저히 저하되면서 그 수명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좋다, 평균 수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이 살인으로 이어지고, 윗집 배관에 문제가 생기면 아랫집까지 수리를 해줘야 하는 건 또 어떤가?  

국토교통부는 2014년 12월 주택법 개정을 통해 ‘장수명 주택 건설 인증기준’을 도입하고, 이에 대한 세부기준을 마련했는데 1천 세대 이상 공동주택을 지으려면 인증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등급은 네 단계로 나뉘는데 최우수 등급(90점 이상)은 건물을 사용할 수 있는 전체 기간인 내용연수(耐用年數) 100년 이상, 우수등급(80점 이상)은 65년 이상 100년 미만, 양호 등급(60점 이상)은 40년 이상 65년 미만, 맨 마지막 일반 등급(50점 이상)은 40년 미만을 의미한다. 50점 이상의 기준에 맞추라고 인증제를 하나 더 만들면서 오랜 수명의 주택을 기대한다는 것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사는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100년 내구성 재료를 가지고 40년 미만의 작품을 만들고 기술점수 50점 이상만 받으면 된단다. 아니, 59점 이하면 ‘F’ 아닌가? 설상가상, 1천 세대 미만의 공동주택은 인증받아야 할 의무사항도 없다. 그야말로 건설업자 천국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 제도시행 이후 5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단 한 곳의 현장만이 내구연한 40년-65년의 양호 등급을 받았을 뿐 나머지 전체는 40년 미만의 일반등급을 취득했다. 우수·최우수 등급이면 건폐율과 용적률 측면에서 인센티브를 얻을 수 있지만 인센티브 대비 건설비용의 증가에 대한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로 건설사가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내구연한 100년은 고사하고 40∼50년으로만 연장해도 320조 원 정도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아파트의 내구연한이 짧은 것도 모자라 그중 90% 이상은 25년도 경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건축되면서 자원낭비로 이어진다. 영국 140년, 미국 103년, 프랑스 85년, 독일 79년이라는 재건축연한을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무려 3배 이상이다. 사막에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받아보고 싶은 밤이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