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문화비평가)
이정배 (문화비평가)

거의 모든 영화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 중의 하나가 등장인물이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장면이다. 거울은 영화에서 가장 즐겨 사용하는 소품 중의 하나이다. 영화적으로 볼 때 거울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인물의 앞과 뒤를 동시에 한 장면 속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얼굴은 그 사람의 무수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 현재 상태를 판단하는 기호로 작동한다. 

한편 뒷모습은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재현해주는 여러 정보를 담고 있다. 따라서 거울에 얼굴 정면이 비치고 동시에 뒷모습을 보여주어 그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 상태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물론 영화에서는 인물의 입체적 조명에 사용하기보다는 인물의 이중성을 암시하는 기재로 주로 사용된다. 

이종혁 감독의 작품 《H》(2002)는 2/3 지점까지 스토리가 꽤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너무 엄격하게 영화 속의 정보를 통제하기 때문에 6차례에 걸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할 정도다. 그러다 우연히 바닷가 화장실에 낙심하여 주저앉은 형사 옆으로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화장실 거울을 유심히 살피다가 사라진다. 

직감적으로 형사는 그가 범인이라 생각하고 추격한다.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범인에 대한 정보가 너무 급작스럽게 노출되었기 때문에 ‘긴장(Suspense)’보다는 ‘놀람(Surprise)’이라는 영화문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성공하지 못해 관객들에게 아무런 느낌을 전해주지 못했다. ‘서프라이즈’도 ‘서스펜스’도 아닌 어정쩡함이 영화를 맥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문 또는 방문 역시 심리를 반영하는 기호로 사용한다. 굳게 닫힌 방문은 그 방의 주인이 마음을 열고 싶지 않다는 의도를 반영한다. 반쯤 열린 방문은 조금 마음을 열어보겠다는 의도를 반영하고 활짝 열린 문은 개방적 심리를 표현한다. 《나니아 연대기-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2005)이나 《어바웃 타임》(2013)의 옷장 문 역시 관객의 상상력을 투사시킨다.

한편 창문은 들여다보기나 엿보기 심리를 반영한다. 문처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상대의 내부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창문이다. 때론 거울처럼 반쯤 자신의 모습을 비출 수 있어서 거울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블루 발렌타인》(2010)에서 유독 차창에 비친 주인공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자신을 반성하면서 동시에 세상을 들여다보는 심리를 상징한다.

창문에서 안쪽이 환하면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지만, 안쪽이 어두우면 밖의 모습이 선명하게 반사된다. 안과 밖의 밝기가 같으면 반반씩 보여주는 신기한 오브제다. 영화 《기생충》(2019)에 반지하 방 창문으로 주인공 송강호가 길거리를 내다보는 장면이 있는데, 창문 안의 주인공 얼굴이 보이지만 길거리 모습도 흐릿하게 창에 반사되어 얼굴에 중첩된다. 

현실과 내면이 오버랩되는 것을 동시에 담을 수 있다는 면에서 영화는 창문 샷을 즐겨 사용한다. 영화 초기에 쇼윈도우 앞에 서 있는 주인공 모습이 자주 등장했던 것 역시 문법적으로는 창문 장면과 같다. 그런 면에서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1961)나 페르잔 오즈페텍 감독의 《창문을 마주보며》(2003)를 분석해 보는 것도 즐거움이 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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