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1919년 의로운 그들은 피를 뿌려가며 독립선언을 하고, 3·1만세 운동을 벌였다.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잘못된 것을 되돌리기 위해 참지 않고 일어나 움직였다. 100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2019년 오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법무부장관 후보자 자녀를 둘러싼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몇 주째 계속되고 있는 지구의 허파 아마존의 화재보다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나는 법무장관 후보자와 그 딸의 특혜 관련 논란에 보탤 수 있는 말이 없다. 단지 그도 자유롭지 못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을 뿐이다. 대학입시, 취업을 위해 우리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시간과 노력을 온통 쏟아붓고 있다. 조금이라도 앞선 출발점에 자식을 세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밥 한 숟가락 더 먹이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디를 향해 이렇게 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필요한 곳에 쓰이는 도구가 아니다. 오랜 세월 우리는 나 스스로의 요구가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기 전에 제도화된 교육의 틀 안에서 자라 밀리듯 성인이 된다. 그 제도 안에서 사랑하는 내 자녀만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하려고 모든 노력을 한다. 정작 사랑하는 그 아이 고유의 재능과 요구는 알아보지 못해 싹이 트지도 못한 채. 

100년 전 1919년 독일 남부의 공업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 루돌프 슈타이너, 에밀 몰트, 칼 슈톡마이어 세 사람이 교육청을 찾아갔다. 산업화로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역할을 하던 학교들이 인간의 개별성을 덮어두고 획일적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서다. 전쟁 속에서도 그들의 뜻은 이루어져 그해 9월 7일 발도르프학교가 문을 열었다. 움직임, 감성, 사고의 능력이 조화롭게 발달한, 고유한 인격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전인교육의 현장이 세워진 것이다. 현재 발도르프교육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유아, 초등, 상급과정까지 갖춘 학교들이 세워지고 있다. 

구조화된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배움이 일어난다는 것이 발도르프 유아교육의 특징이다. 인간의 본성에 집중하고 고유한 개별성에 가치를 두며, 결코 성인이 아이들을 이끌거나 촉진하지 않는다. 성인들이 내면과 삶을 가꾸는 좋은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이를 모방하고 놀이 속에서 구현하며 세상을 배워 나간다. 놀이로 아이들은 과학의 원리를 몸으로 경험하고,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기를 배우며, 자기의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아이에게는 놀이가 세상과 관계를 맺고 배우는 교육과정 자체인 것이다.  

모든 유아교육 현장에서는 늘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그 놀이는 구조화된 흥미영역을 순회하는 것처럼 보인다. 개별적인 내적욕구에 의해 능동적으로 노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구성된 환경을 체험하는 것이다. 빈약한 어른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교재와 교구들은 무한한 아이들의 상상력을 담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러한 것들이 “자유놀이, 혹은 자유선택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하루 2시간 이상씩 참여하도록 주어진다. 

지난 8월 22일 춘천시청에서 놀이전문가 편해문 선생님의 공개강연이 있었다. “위험해야 안전합니다. 재촉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스스로 가장 안전하게 놉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놀이공간이 그의 이야기 속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8월말 ‘2019개정 누리과정’이 발령되었다. “누리과정의 목적은 유아가 놀이를 통해 심신의 건강과 조화로운 발달을 이루고 바른 인성과 민주시민의 기초를 형성하는데 있다.”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 아닌 조화로운 발달과 바른 인성! 누리과정의 목적이 어떤 방식으로 현장에서 구현될지 기대와 염려가 동시에 된다. 춘천에도 곧 아이들이 가고 싶은 놀이터가 만들어질 것 같다. 개정 누리과정은 아이들의 발달수단으로 놀이를 제시하고 있다. 춘천의 놀이터와 유아교육현장에 건강한 새 바람이 일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아이들이 해방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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