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사람들 목소리에는 슬픔과 기쁨이 묻어난다. 하긴 우리 고양이도, 공원을 오가는 비둘기들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공원에서 살 때 한밤중이 되면 공원 나무 의자에 홀로 앉아 우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혼자 우는 사람을 보면 늘 마음이 이상해졌다. 나도 엄마와 헤어진 뒤 그렇게 혼자 울고 싶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사람들은 집단으로 산다고 했는데 공원에서 우는 사람은 늘 혼자였다.”

김중미의 소설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를 읽고 있노라면 저절로 고양이가 되어 약간의 경계심을 가진 채 구석진 골목의 어둠에 몸을 가리고 사람들을 지켜보게 된다. 고양이의 시야에 들어온 한국인들의 현실은 ‘뚜벅뚜벅’보다는 ‘비틀비틀’에 가깝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LI·Better Life Index)’와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WHR·World Happiness Report)에 따르면 한국은 OECD의 BLI 순위에서 36개 OECD 국가 가운데 2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WHR에서도 한국은 156개국 가운데 56위였다. 한국의 1인당 GDP는 28위, 건강한 기대수명은 4위로, 소득과 건강 부문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사회적 지원 분야에서는 98위다. WHR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와줄 친구나 친척이 없다’는 응답자가 20%대인데 이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5%대)보다 4배나 높을 만큼 사회적 안전망에 취약하다.

정부는 올해부터 5년간 332조원을 투자해 ‘경제·사회발전의 균형을 통한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사회보장제도의 중·장기 목표로 잡고, OECD가 발표하는 ‘삶의 만족도 지수’를 2023년엔 회원국 중간 수준인 20위까지, 2040년에는 10위까지 올리겠다고 한다. 

여태 우리는 한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건강성보다 국민총생산, 일인당 국민소득이니 하는 지표를 사용해 물질적으로만 평가해온 게 사실이다. 이제 수량적 지표를 벗어나 삶의 질로 방향을 수정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아직 사회의 보편적 사고는 경제에 함몰되어 있고 그런 사회에서 관계 맺기는 돈과 시간의 부산물일 뿐이다. 가정에서 심지어 학교에서도 문화 향유와 관련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연우 곁에서 멀어졌다. 연우와 아저씨의 슬픔이 점점 커져서 내 슬픔은 점점 작아졌다. 나도 슬픔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아무하고도 나눌 수가 없었다. 슬픔을 내 안에만 담아 두려니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움직이기가 싫어졌다. 그리고 가슴은 점점 텅 비어만 갔다. 그 허전함을 채우려고 사료를 먹어 보지만,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지난 6월 대법원이 성인의 몸을 본뜬 성기구인 ‘리얼 돌(real doll)’의 수입을 허용하면서 논란이 한창이다. 정말 ‘사람 같은’ 제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동·임산부 인형까지 합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왔다. 방에 사이비 인간을 들여놓고 외로움을 덜겠다는 시대로 진입했다. 하지만 사랑 혹은 연민을 벗어난 모든 관계는 본질적으로 허망하고 허무할 뿐이다. 

문화의 진화 과정을 믿는 사람이라면 20년 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Michael Tilson Thomas)가 예견했던 “섹스와 마약, 로큰롤이 끝나면 결국 클래식 음악만 남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 위안을 얻을 것이고, 슬픔과 허전함의 골목을 돌고 돌아온 영혼이라면 깁스를 한 다리에 깡마른 백구를 받아들이는 연우에 공감하고 힘을 낼 것이다.

“모리야, 마음에 방 하나를 더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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