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문재인도 싫지만 자유한국당은 더 싫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지난 18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황교안 현 대표의 삭발이 ‘김치 올드만’ 등으로 희화화 되자 내뱉은 말이다. 홍 전 대표는 자신의 존재감과 유용성을 알리기 위해 이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 말이 이른바 ‘조국 정국’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여야 대결구도가 아닌 제3의 지대가 존재하고 그 문제제기가 힘을 얻어 갈 수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름대로 가치를 두고 봐야 할 제3지대의 시선은 홍 대표의 이 발언과 전제나 결론이 다른 내용이긴 하다. 홍 대표는 문재인 혹은 조국이 나쁜 사람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해 여당을 무너뜨릴 더 좋은 방책을 만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니 겉보기에는 제3의 지대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갈등하는 두 당사자 중 하나의 입장 위에 서 있는 발언이다. 

이와는 달리 홍 대표의 발언에 담겨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장관 임명 강행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자유한국당의 결사반대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선은 분명 제3의 지대가 맞다. 이런 시선에도 결이 서로 다른 생각이 있어 딱히 한 가지라고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정당 간의 세력 다툼 너머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가령, 지난 1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범시민단체연합, 국민행동본부 등 400여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연 ‘조국 사퇴 기자회견’이 그런 사례다.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말이 주를 이루었지만 무게 중심은 정당이 아니라 국민에 있는 듯 보였다. 정치인 전체를 향해 “당신들이 쏟아내는 언어의 유희로 대한민국이 망가지고 있다”면서 “정치혐오와 불신은 당신들이 만들었지만 그 최대의 희생양은 국민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내용은 자유한국당이나 ‘태극기부대’로 통칭될 수 있는 여느 보수단체의 주장과는 지향이 다르다. 실제로 이 단체들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친박5적 규탄 및 새누리당 해체’ 기자회견을 했는가 하면 김진태 의원 등에 의해 촉발된 ‘5·18 망언’을 규탄하기도 했다. 

종종 매체를 통해 등장하는 주장이어서 구태여 사례를 특정하지 않아도 알만한 내용이지만 ‘386세대’나 ‘강남좌파’에 대한 주로 젊은 세대의 비판 역시 제3지대임이 분명하다. 80년대 민주화 시대에는 ‘미래 우리들의 자식을 위해서’라고 싸우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이제는 ‘내 자식만을 위해’ 살고 있더라는 데 대한 배신감이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해서 하는 사퇴요구가 아니니 조 장관의 사퇴요구가 곧 자유한국당의 지지라고 말할 수 없다. 

‘조국 장관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다’, ‘아니다’는 말을 여야가 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조 장관에 대한 반대 여부에 관계없이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떤 정당도 반대를 표방하지 않고 있다.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비율이 더 많다. 따라서 제3의 지대에서 나온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의 발언을 정치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제3지대의 관심은 국론분열과 이기적인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이기 때문에 다행히 검찰개혁이 잘 이루어졌다 해도 여야 모두 큰 과제를 새로 안게 되지는 않을까? 춘천과 같은 기초자치단체의 정치권에서도 주변을 둘러보며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내용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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