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운동하고 샤워를 한 후 컴퓨터를 켠다. 급히 글을 써야 할 때도 한글 프로그램을 먼저 열기보다는 프리셀(FreeCell) 게임으로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에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다. 숙제를 하기 전 10여 분의 워밍업으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윈도우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프리셀이 무작위로 던져주는 게임을 하는 동안 긴장했던 육체는 차분히 가라앉고 무장해제 됐던 정신은 슬슬 임전 태세를 갖추게 된다. 간혹 해결하지 못한 판을 만나게 되면 저장했다가 다음에 이어서 풀곤 한다. 

며칠 전 그날도 임의로 주어진 게임을 풀고 있었는데 풀릴 듯 풀릴 듯하던 게임이 실패에 실패를 반복하며 어느덧 1시간이 지나가버렸다. 후속 작업으로 이어지기는커녕 졸린 나머지 게임마저 포기하고 잠자리에 들고 말았다. 늘 만만하던 게임이 처음으로 난공불락의 수수께끼처럼 다가왔다. 그 후 며칠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내 능력 밖이었다. #1941. 참담한 마음에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와우! 거기엔 또 하나의 세상이 있었다.

그중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2002년 5월 《딴지일보》가 소개했던 ‘프리셀 프로젝트’였다. 윈도우즈 95에 내장된 프리셀 3만2천 개의 게임(윈도우즈XP에서는 1백만 개로 늘었지만)을 대상으로 데이브 링(Dave Ring)이라는 대학생이 시작한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과연 이 모든 프리셀 게임에는 모두 다 해답이 있는지, 개중에 불가능한 판이 있는지에 호기심을 걸어둔 네티즌들이 참여해 3만2천 개의 게임을 모두 분해한 것이다. 

불가능한 게임은 존재할까? 프리셀 메뉴에서 게임 선택(F3)에 ‘-1’이나 ‘-2’를 입력하면 한눈에 보기에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난공불락의 카드 배열이 펼쳐진다. 프로그래머들이 장난을 친 것으로, 풀리지 않는 판이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개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게임 중 안 깨지는 판이 있을까? 3만2천 개 중에 딱 하나 있다. #11982. 그 누구도 풀지 못했으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도 풀지 못한 판이라고 한다. 왜 안 풀리는지에 대한 수학적 증명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풀 수는 있되 어려운 판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어려운 판이 셋 있다. #617, #1941 그리고 #10692. 그에 걸맞은 친절한 조언이 농담처럼 달려있다. “이 세 판을 각각 1시간 안에 풀 수 있다면…, 당신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인류를 위해 그 머리를 써라.”

그렇게 알게 된 #617은 이틀 만에, #10692은 20여 분 만에 풀었다. 네티즌이 올려놓은 해법을 보고 이해한 #1941을 통해 ‘제자리 맴맴’의 덧없음을 깨닫고 난 다음이었다. 

막혔다 혹은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에도 그간의 노고 때문에 쉽사리 처음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빙빙 돌며 실마리를 찾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문제 해결이 목적이라면 잘못을 눈치챈 바로 그 순간 지체 없이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것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갔다면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시도하라는 것을 배웠다. 

승률에 집착하면 시간은 시들고 만다, 꺾인 꽃이 그러하듯이. 우리네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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