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김진규 (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아니, ‘이 양반’이 이거 왜 이래?” 맥주집 앞에서 시비가 붙은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이 문장에서 관형사 ‘이’에 이어진 명사 ‘양반’은, 붙여 읽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할 때는, 외려 제대로 잘 붙여 말한다. 모국어의 본능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반면 말하기가 아니라, 글로 된 문장을 읽으라고 하면 꼭 띄어쓰기대로 띄어 읽는다. 오류다. 학교에서 문법은 배웠어도 어법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띄어쓰기대로 띄어 읽으면 되는 줄 알고 흔히들 그리 읽는다. 관형사에 명사가 이어지는 문장에서 문법에서는 띄어 쓰는 게 맞고, 어법에서는 붙여 읽는 게 맞다. 관형사가 이 사람이 아닌 그 사람, 혹은 그 사람이 아닌 저 사람이라는 ‘선택적 성격’을 지닐 땐, 붙여 읽어야 한다. “아니, ‘이양반이’ 이거 왜 이래”처럼 말이다. 시로 예를 들어 보자. 한글날도 곧 다가오니, 오세영 시인의 <아아, 훈민정음>이 좋겠다. “그러나 이 땅, 그 수많은 종족의 수많은/ 언어 가운데서 과연/ 그 어떤 것이 신(神)의 부름을 입었을 손가./ 마땅히 그는 한국어일지니” 이 시에서 ‘이 땅’은, “이땅”처럼 관형사와 명사를 붙여 읽어야 한다. ‘이 땅’은 이 나라를 뜻한다. 다른 나라가 아닌 이 나라(=우리나라)를 뜻한다. 선택적 성격을 지닌 지시 관형사 ‘이’에 이어진 명사는, 반드시 붙여 읽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낭독과 낭송은 거기서 나온다. 그것이 포즈의 기본이다.

신발을 사러 갔다. 주인장이 파란 신발을 들어 보이며 “이 신발로 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아뇨, 저 빨간 신발로 주세요” 하며 손님이 말했다. 앞 문장의 ‘이 신발’은, 붙여 읽는 게 당연하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선택적 성격이니까. 그러면 뒤 문장 “저 빨간 신발”은, 어떻게 읽을까. 이때는, “저/빨간신발”처럼 관형사 다음에 띄어서 읽어야 한다. 관형사와 명사 사이에 수식어가 있을 땐, 띄어서 읽어야 하는 게 포즈의 원칙이다. 위의 오세영 시 속 ‘그 수많은 종족’도 역시 “그/수많은종족”처럼 관형사 다음에 띄어야 한다. 관형사와 명사 사이에 수식어가 있을 때는 띄어 읽어야 자연스럽다. 그것이 포즈의 기본이다.

몇 가지 정리하면서 익혀 보자. ‘이신발(0), 이/신발(×)’. ‘이땅의아들(0), 이/땅의아들(×)’. ‘저/빨간신발(0), 저빨간신발(×). ‘저산(0), 저/산(×)’. 저/뾰족한산(0), 저뾰족한산(×). ‘형이라는 그사람도(0), 형이라는 그/사람도(×)’, 그/형이라는 사람도(0), 그형이라는 사람도(×). 헷갈릴 수도 있다. 그래도 조금 익혔으면, 다시 시를 보고 읽어보면서 정확한 포즈로 읽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를 몸으로 느껴보자. 이상화 시인이 스스로 자신의 대표 시라고 한 <역천>의 첫 연 첫 행을 보자. “이때야말로 이 나라의 보배로운 가을철이다” 한 번은 “이때야말로 ‘이나라’의 보배로운 가을철이다”로, 또 한 번은 “이때야말로 ‘이/나라’의 보배로운 가을철이다”로 읽어보고 그 차이를 몸으로 느껴보자. 다음은 <역천> 3연의 1행이다. “이런 때 이런 밤 이 나라까지 복되게 보이는 저편 하늘을” 역시 “이런 때 이런 밤 ‘이나라까지’ 복되게 보이는 저편 하늘을...”으로 한 번, “이런 때 이런 밤 ‘이/나라까지’ 복되게 보이는...”으로, 또 한 번 읽어보고 차이를 생각해보자. 포즈의 기본을 느껴보자. 

‘관형사+명사로 된 문장에서 띄어읽기’의 마지막으로 ‘관형사에 선택의 의미가 없는 경우’를 보자. 이때는 관형사 다음에 띄어 읽어야 한다. “그 술 좀 그만 마셔라” 라는 문장에서의 관형사 ‘그’는, 선택의 의미가 없다. 이때의 술은, 소주·맥주·양주 중의 하나가 아니라, 단지 관습에 따라 붙인 관형사이지 선택의 성격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술 좀 그만 마셔라”처럼 읽어야 한다. 그것이 포즈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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