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면 박암리 박수영 이장

교통이 제일 문제에요. 버스가 하루 3번 오는데 한 번 더 다녔으면 좋겠어요. 최근 들어서 위락시설이 많이 생기면서 행락철에 외지차량이 엄청나게 들어와요. 관광버스라도 마주치면 곤란하지요. 도로가 좀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박암리가 접하고 있는 북한강, 홍천강의 모습. 사진 성다혜 인턴기자
박암리가 접하고 있는 북한강, 홍천강의 모습. 사진 성다혜 인턴기자

춘천의 가장 남쪽, 북한강과 홍천강도 마지막 발걸음을 재촉하는 남면의 끝자락에 박암리가 있다. 시내에서 차로 40~50분을 가야 하는 마을이다. 산길로 난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참이나 지나서야 박암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기다리던 박수영 이장이 악수와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현재 박암리 주민이 몇 명이나 됩니까?

지금 원주민은 33세대가 있어요. 58분 정도고요. 최근 들어 강가로 펜션이나 수상레저 업체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분들이 열댓 명 되는데 합치면 거의 50세대 정도가 되지요. 마을일에 참여하지는 않으니까 주민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주민들 연령대는 어떻게 됩니까?

거의 노인분이지요. 제가 60인데 가장 젊어요. 저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한 명 있는데 그 동생도 50대고. 예전에는 사람이 많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이 작은 동네에 아이들이 백 명이 넘었으니까요.

박암리는 어떤 동네였나요?

여기 길이 생긴 지는 30년 정도 됐습니다. 밖으로 나가려면 나룻배를 타고 나가야 했지요. 나중에 ‘똑딱선’으로 바뀌었고요. 겨울이 돼서 강이 얼면 ‘발고’라는 얼음썰매를 타고 밖으로 나가고요. 그러니 원래 이곳의 생활권은 가평 시내와 설악면이었어요. 그러다가 육로가 생기면서 춘천 생활권에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예전에는 전기도 없었지요. 대신 자동차 베터리를 배달해 주는 배가 있었어요. 다 쓴 배터리를 수거해가서 충전해서 주는 거예요.

여기 3개 반이 있어요. 산 밑에가 1반, 강 쪽이 2반, 안쪽이 3반 이랬는데 3개 반이 모여서 체육대회도 하고 전통놀이도 하고 했어요. 그런데 했다하면 무조건 1반이 이겼어요. 1반 사람들이 2반, 3반을 ‘버덩’이라고 불렀는데 ‘버덩’은 평지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2반, 3반에는 리어카도 다니고 하는데 1반은 산이어서 무조건 지게로 등짐을 져야하니까 힘이 상대가 안 돼지요. 1반 사람들이 드셌어요. 그때가 참 재미있었지요.

이장님은 여기 계속 사셨습니까?

아니에요. 스물다섯 살에 떠났다가 6년 전에 돌아왔어요. 나이도 먹고 하니까 고향생각도 나고 농사도 짓고 싶고 해서요. 제가 박암리에서 가장 먼저 나갔어요. 88년도에 나갔으니까. 90년도 되면서 사람들이 싹 빠져나갔어요. IMF 터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있어요. 요즘 들어서 저처럼 나이가 들어서 다시 돌아오려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박수영 이장(왼쪽)이 기자에게 예전에는 강가에 모래톱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박수영 이장(왼쪽)이 기자에게 예전에는 강가에 모래톱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농사를 짓습니까?

그렇지요. 노인들이고 하니까 먹을 것 정도 짓지요. 조금 남으면 팔고. 아까 말한 젊은 동생만 만 평 농사를 지어요. 젊고 힘이 있으니까. 그래도 고생스럽지요. 하지만 애들을 더 키워야 하니 어쩔 수 없지요. 박암리에서는 젊은 동생이 고생 제일 많이 해요.

시나 시민들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입니까?

일단 교통이 제일 문제에요. 버스가 하루 3번 오는데 한 번 더 다녔으면 좋겠어요. 지금 협의 중에 있어요. 도로도 너무 열악해요. 예전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최근 들어서 위락시설이 많이 생기면서 행락철에 외지차량이 엄청나게 들어와요. 관광버스라도 마주치면 곤란하지요. 도로가 좀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시에다가 제안을 많이 했는데 소식이 없네요. 또 물놀이 하러 오는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워요. 수상스키 타러 많이 오는데 주민들이 많이 힘들어해요. 주민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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