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을 꿈꾸는 사람들] 요선동 이상현 씨 편 - ②번영의 땅, 화마에 맞서 싸우며 터를 닦다
[도시재생을 꿈꾸는 사람들] 요선동 이상현 씨 편 - ②번영의 땅, 화마에 맞서 싸우며 터를 닦다
  • 홍석천 기자
  • 승인 2019.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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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버지가 연탄공장을 했거든. 거기서 연탄을 떼어다가 파는 거지. 나는 그냥 리어카 한 대에 외상으로 연탄을 가져다가 품값만 받고 파는 거야. 길이 험한 곳에 가져다주면 수고비를 조금 더 쳐주는 거지. 하루에 연탄 300장 팔면 쌀 닷 되 정도 받고 했어."

‘도시재생을 꿈꾸는 사람들’은 교동, 근화동, 소양동, 약사명동의 옛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과거의 조각을 모으고, 오래된 도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늠하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는 춘천시 사회혁신센터와 함께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아버지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는 이상현 씨.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아버지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는 이상현 씨.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그렇게 요선동에 정착한지 2년 정도 있다가 큰 불이 났었어. 6·25전쟁이 아직 안 끝났을 때니까 중학교 다닐 때지. 지붕은 미군들이 먹고 버린 깡통 주워다가 함석을 펴서 얹어 놓고 그랬지.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 그러니 어디서 한번 불이 호로록 붙으면 홀랑 타버려. 소방수가 그때도 있었지만 와서 감히 끄질 못해. 미군들도 와서 보더니 도저히 안 되겠는 거야. 그래서 불도저가 와서는 밀어 버렸어. 옆으로 불이 번지지 않게 한데 모아 놓는 거야. 네 맘대로 타라고 그냥. 하하하.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그나마도 홀랑 다 타먹은 거지. 다들 몸만 뛰쳐나왔어. 지금처럼 이런 건물이면 한 칸도 안탔을 거야. 그런데 꼭대기는 기름 묻은 오일 박스를 덮었고, 옆에는 얇은 판자때기니 훌훌 타는 거야. 수도 시설도 없으니까 불 끌 엄두도 못 내고. 다행이 인명 피해는 없었어. 후다닥 다 뛰쳐나와서. 2층도 아니고 전부 단칸방이니 그게 오히려 사람을 안 다치게 한 거지. 어디서 어떻게 불이 났는지도 몰라.

요즘이야 보험도 있고 국가에서 도움도 주고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게 일절 없었어요. 각자가 알아서 능력껏 다시 재건을 하기 시작한 거지. 모아둔 돈으로 하든지, 어디서 빌리든지. 한 채가 어떻게 지어지면 그 앞뒤로, 옆으로 주르륵 붙여 지어가면서 그렇게 발전하기 시작한 거야. 지금 같은 건물은 아니지만 이전 건물보다는 조금 나아졌어요. 지금 인성병원으로 해서 기업은행으로 해서 적십자병원으로 해서 민간인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또 모여살기 시작했어요. 판잣집이기는 한데 군데군데 부로꾸(시멘트블록)로 지은 집들이 생기고 했지. 페인트칠까지 하면 겉으로 보기에 아주 근사한 집으로 보이지. 집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자면 요선동에 지금처럼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게 된 것은 86년에 춘천에서 전국체전을 하게 되면서야. (확인 결과 제66회 전국체전은 1985년 10월 10일부터 15일까지 춘천, 원주 강릉에서 개최된 것으로 나타났다. ‘뭉친 힘, 솟는 기상, 빛나는 내일’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대회에서 아시아 신기록 1개와 한국 신기록 22개가 나왔다.) 강원도가 전국체전을 열겠다고 덜컥 약속은 받아놨는데 돈은 없어. 판잣집이 죽 늘어서 있는데 손님을 어떻게 맞느냐고? 그걸 그때 기준으로도 정상적으로 집들을 뜯어 고치려면 도저히 안 되는 거야. 집과 집 사이는 측량을 해서 25cm씩 간격을 내게 돼 있었거든. 그런데 방법이 없잖아? 그러니까 중앙정부가 “그렇다면 그냥 지어라. 특별히 규정을 무시하고 붙여서라도 뜯어 고쳐라.” 그렇게 해서 지금 요선동 집들이 그렇게 붙어있는 거야. 실은 강원도가 무리하게 한 거지. 중앙에서도 강원도 발전을 위해서 하라고 한 거고. 말하자면 요선동은 사람들이 먹고 살려고 모인 동네였다가 또 경제발전을 과시하는, 그런 발전을 상징하는 동네로 바뀌게 된 셈이지. 아주 휘황찬란했어. 술집이 즐비하고.

요선동에 지금처럼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게 된 것은 춘천에서 전국체전을 하게 되면서야.

제66회 전국체육대회 메달.
제66회 전국체육대회 메달.

전국체전이 끝나고 얼마쯤 있다가 상권이 서서히 지금의 명동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희한하게도 전국체전을 무리하게 준비하면서 너무 거리도 협소하고 건물도 붙어있고 그래서 그런 것 같아. 사람들은 널찍한 가게로 가려했고, 메이커 옷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니까 요선동은 좁은 거지. 맘보춤도 유행하고 하니까 애들이 좀 흔들고도 싶지 않겠어? 그런 새로운 문화가 서서히 유행하면서 지금 명동 쪽에 ‘아, 여기다가 하면 애들이 좀 오겠다’ 해서 그쪽으로다가 큰 건물을 짓고 사람들을 모은 거지. 요선동은 구형이고 명동은 신형인 거야. 요선동에서 장사깨나 하던 사람들은 그때 다 명동으로 넘어갔어요. 요선동은 다 칸이 고만고만하니까 어떻게 해볼 수가 없잖아. 그리고 그때 요선동은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이도 많이 먹고 하니까 바꿔 보려고 하지를 않아. 노인네가 돼가지고 귀찮은 거야. 사람이랑 동네랑 같이 늙어버린 거지. 6·25 후에는 그걸로 만족했지마는 사람들이 이제 더 좋은 걸 바라는 거야. 조명도 껌벅껌벅 좀 화려한 게 있어야 하는데 여긴 아무 것도 없었지.

여하튼 고등학교 졸업하고 작은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 그때는 마땅한 일거리가 없으니까 제일 흔한 게 연탄배달이에요. 작은아버지가 연탄공장을 했거든. 거기서 연탄을 떼어다가 파는 거지. 나는 그냥 리어카 한 대에 외상으로 연탄을 가져다가 품값만 받고 파는 거야. 길이 험한 곳에 가져다주면 수고비를 조금 더 쳐주는 거지. 하루에 연탄 300장 팔면 쌀 닷 되 정도 받고 했어. 말하자면 작은아버지는 연탄 도매고 나는 소매인거지. 연탄공장이라고 해도 기계로 찍어내는 게 아니야. 사람들을 모아놓고 수타로 만들었어. 석탄가루를 연탄 찍는 틀에 넣어가지고 손으로 탕탕 두드려서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모양도 좀 삐뚤빼뚤해. 높이 쌓기가 힘들어요. 무너지니까. 이쪽으로 좀 기운다 싶으면 반대로 각도를 맞춰서 올라가야 해. 웃긴다고. 하하하하. 공장에서 나오는 직원들 보면 아주 새까매. 석탄가루 속에서 하루 종일 사니까. 그래도 거기서 일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경쟁이 높았어요. 그때는 연탄공장에 들어가는 게 지금 같으면 대기업 들어가는 것 같았지. 들어가려고 난리였어. 다들 그렇게 살았습니다. 요선동 사람들만 그랬겠어? 우리나라가 그런 시절이었지. 요선동이 그렇게 커왔고 올려놨는데 지금 이렇게 되니 너무 안타깝지.

-다음 호에 계속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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