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악이야기] 파가니니: 로시니의 모세주제에 의한 변주곡
[나의 음악이야기] 파가니니: 로시니의 모세주제에 의한 변주곡
  • 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 승인 2019.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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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빈 옥수숫대가 버스럭 거리는 밭 가장자리에 서서 바람을 듣는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휘저어대는 소리. 구석으로 깊숙이 밀어두었던 생각의 파편들이 다시 의식으로 떠올라 자꾸만 마음이 아파오는 소리다. 게다가 저무는 빛깔이 하늘을 태울 듯 붉게 번지는 시간이라니.

얼른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온 몸에 수혈한다. 이런 날은 <파가니니: 로시니의 모세주제에 의한 변주곡 Variations on a theme from the opera Moses>이 딱 이다. 이 음악은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의 오페라 <모세>에 들어 있는 아리아 <하늘의 옥좌에서>라는 곡의 선율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할 때 뒤에는 애굽(이집트)의 군사들이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암담한 상황에서 하늘에 간절하게 올려드리는 기도문. 이 테마를 바이올린의 귀재라 불리는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가 변주시켰다. 

한 개의 주제를 조성을 바꾸거나 박자를, 혹은 멜로디의 모양, 리듬, 빠르기 등을 변화시켜 연주하는 형태의 곡을 변주곡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부르던 동요 <반짝반짝 작은 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작곡가가 모차르트라는 걸 아는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멜로디를 생각하고 모차르트의 <반짝반짝 별 주제에 의한 변주>를 들어보면 반짝반짝 작은 별이 어떻게 변주되는지 금방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변주곡이다.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피아노 반주에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도록 작곡하였지만, 주인공 모세가 테너가 아닌 바리톤이라서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소리를 내는 G선 만으로 작곡이 되었다. 때문에 이 곡을 찾으면 바이올린보다 첼로로 연주하는 버전이 훨씬 많다. C단조로 시작하는 서주는 느리고 장엄한 분위기로 시작하면서 마음의 맨 아래 부분으로 내려가 깊은 아픔을 툭 건드린다. 바이올린에서는 같은 음을 연주하더라도 어느 현, 어느 포지션에서 연주하는지에 따라 그 음색이 달라지는데, 오페라 아리아의 선율이 높아질수록 낮은 음인 G현의 하이포지션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신비스런 음색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침 하늘에 하현달이 실낱같이 날카롭게 떠있지만 뾰족하지만은 않은 그 느낌과 같다고 할까? 머리카락이 위로 쭈뼛 서는 느낌이지만 서늘하면서도 아름답다. 

주제의 끝 부분에서 장조로 조성이 바뀌고 모세가 이끄는 히브리 백성들의 행진을 연상케 하는 빠르고 경쾌한 주제와 변주가 이어진다. 파가니니 특유의 자신만만한 바이올린의 고난도 기교들이 들판의 보랏빛 들꽃송이처럼 번진다. 가을의 빛깔과 첼로의 선율은 아주 잘 어울린다. 그렇지만 바이올린의 G선으로 연주하는 고음의 선율은 G선만이 줄 수 있는 특유의 소리를 들려주므로 그 매력 또한 벗어 날 수 없다. 

이 음악은 누군가의 뒷모습에 참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계절이 뒷모습을 보이며 성큼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떠나는 것들은 모두 뒷모습이다. 떠나는 것도 보내는 것도 한여름 밤의 꿈처럼 한바탕의 절정은 있었을 테지. 이제 툭툭 떨어지고 사그라드는 꽃송이들처럼 모두 비워가는 계절의 곁에서 음악을 꺼내어 그 선율에 함께 흘러보자. 가만,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뒷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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