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문화비평가)
이정배 (문화비평가)

1810년 독일의 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자신의 이론과 실험을 집대성한 《색채론》을 출판한다. 그에 앞서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이 기존의 빛에 관한 이론에 저항한 광학 논문을 내놓았는데, 빗발치는 비판과 오해로 연구가 중단되었고, 그의 광학 이론은 30년이 지난 1704년에 《광학》이란 책으로 출판되었다. 

20대 중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해진 괴테는 문학뿐만 아니라 생물학과 광물학 등 과학 전반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의 일생 공부의 목적이 지식의 통일성과 삶의 총체성이었기 때문이다. 괴테는 뉴턴의 빛에 관한 연구에서 오류를 찾아낸다. 그리하여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모든 색깔이 만들어진다는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괴테는 색깔이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특성만 지닌 것이 아니라, 감정을 지니고 있고 도덕성도 지니고 있으며,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상징성과, 교류할 수 있는 언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괴테는 색깔의 심리적 효과에 대해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이러한 색채 심리에 관한 괴테 이론은 미술은 물론 영화를 비롯한 공연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흰색이 어떤 민족에게는 죽음을 의미하지만 다른 민족에게는 신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색깔에 대한 이미지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색깔에 대해 보편적인 이미지가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 자주 영화에 적용된다. 의상이나 소품 그리고 벽 등의 배경을 이루는 주된 색채에 등장인물의 심리를 반영시킨다. 

홍콩의 감독 왕가위(Wong Kar-Wai, 1958~ )는 자신의 영화에 색채의 의미를 반영했다. 다섯 가지 색깔에 맞추어 사랑을 이야기했다. 《열혈남아》(1987)는 파랑, 《중경삼림》(1995)은 오렌지색, 《타락천사》(1995)는 주홍색, 《해피투게더》(1998)는 초록색, 《화양연화》(2000)는 붉은색으로 사랑 이야기를 펼쳤다. 

그리고 앞의 다섯 색깔에 덧붙여 왕가위 감독 영화의 ‘모든 사랑의 색’을 포괄하는 《2046》(2004)과 ‘흰색 & 검정색’의 사랑 이야기인 《일대종사》(2013)를 제작하여 일곱 가지 색깔의 사랑 이야기를 완성하였다. 때로는 붉은색과 같은 열정적인 사랑도 있고, 푸른색처럼 냉정한 사랑도 있다. 그는 사랑의 다양한 방식과 감정 변화를 색으로 이야기하였다. 

색채 이미지에 맞춘 영화제작은 크르지토프 키에슬로브스키(Krzysztof Kieslowski, 1941~1996)가 유럽연합 직전에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제작한 세 가지 사랑의 색 시리즈 영화, 《블루》(1993), 《화이트》(1994), 《레드》(1994)에도 등장한다. 이들 세 가지 색깔은 각각 프랑스 국기의 세 가지 색깔의 의미인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 

영화는 문학과 달리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사랑, 믿음, 행복 등과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대사를 통해 직유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액션(Action)’이라는 영화만의 특성을 감소시킨다. 따라서 영화는 내면의 감정이나 생각을 주로 색으로 표현한다. 

영화에서 색채 사용은 영화의 은유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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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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