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활동가 김복기

‘마음의 평화’에서 출발해 ‘관계의 평화’ 더 나아가 ‘국가의 평화’까지 우리는 항상 평화를 꿈꾼다. 지난 4월 27일, 작년 4.27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는 1주년에 시민주도로 시작된 ‘DMZ평화인간띠잇기운동’에 주력한 김복기 평화활동가를 만나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역 파송되어 6년째 춘천에 살며 전국으로 평화강의와 관련 서적 번역을 하고 있는 그는 춘천에서 성장기를 보낸 춘천 사람이다. 홍천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당시 교회 집사였고 3남 3녀의 다섯째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는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이웃과 친지들의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사람”이라 전해 들은 것으로 대신했다.

김복기 목사
김복기 목사                                          사진 이철훈 시민기자

춘천으로 이사와 동춘천국민학교와 춘천중, 춘천고를 졸업했는데 청소년기가 신학을 하게 된 배경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춘천고 이전에 기계공고를 다녔었는데 고2 때 도민체전의 매스게임을 인문계를 제외한 실업계에만 시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선생님께서 매스게임 안 할 사람 나오라고 했을 때 몇 명이 나갔고 그 안에 그도 있었다. 친구들은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당시 학교에선 체벌이 일상이었을 시기라 여지없이 체벌이 가해졌다. 그의 차례가 돌아왔다. “너는 왜 못해?”라는 질문에 “그냥 하기 싫어서요”라는 대답에 선생님은 의아해하셨지만 그를 체벌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매스게임에 제외된 학생들은 잔디밭 풀 뽑기를 시켰는데 ‘이러려고 학교를 왔나’ 하는 생각에 그는 다음날부터 학교를 가지 않았다.

큰 형님의 결혼식을 마친 뒤 아버지께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주셨고 다시 춘천고를 입학해 결국 고등학교를 5년 다니게 되었다. 그 기억이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삶의 전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강원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캐나다로 간 유학길, 영어를 배우려고 우연히 신학 청강을 하던 메노나이트(Mennonite) 신학교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조경학을 포기하고 신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목회학 석사를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와 캐나다 시민권자로 정착해 목회 활동과 교회 개척을 해왔다.

삶을 되짚어 보니 자신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고 반복되는 일은 지루해하는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실패란 없다고 생각하며 안 되면 안 되는 것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과감하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단다.

당시 조경학이 신생학과여서 박사를 했다면 지금쯤 조경학 학자나 교수를 하고 있었을 텐데 후회는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변에서 아무도 그에게 그렇게 묻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신학에 충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인터뷰는 일상에 관한 이야기들로 흥미롭게 펼쳐졌다. 기자에게 생소했던 “회복적 정의”도 일상에 접목해 쉽게 설명을 풀어주었다. 학교폭력의 문제점을 경험했던 기자에게 그의 해결방식은 깊은 공감을 갖게 했다.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어요. 학교에서 개입을 합니다. 징계를 결정하지요. 하지만 정작 피해자는 가해자를 만날 수도 없고 사과를 받을 수도 없어요. 또한 가해자도 피해자에게 사과를 할 수가 없고 학교의 징계를 받고 사건은 종료됩니다. 과연 이렇게 학교폭력이 마무리되었을 때, 피해자의 상처가 회복이 되었을까요? 정작 당사자들은 화해를 할 수가 없고 각자의 변호사나 부모님 그리고 학교가 사건을 정리해버리죠.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친구 관계였고 가까운 사람이었다면 더더욱 상처는 치유되지 않겠지요. 피해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해요. 가해자 중심으로 체벌만 한다면 그 기억이 영원히 상처로 남지 않겠어요? 이럴 때는 서로 만나 대화 프로그램으로 소통하고 각각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 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의하는 징계를 받아야 모두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캐나다는 장애인, 어린이, 노인, 여성의 천국이고 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시스템을 충분히 잘 갖추고 있다고 한다. 입시 위주의 한국학교와는 달리 재능을 천천히 발견해가는 교육으로 건강한 학교를 국가와 지역공동체가 제공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미국에서 인상 깊었던 학교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흑인과 스페인계 학생이 90%였던 학교에 저의 아이를 보냈었어요.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저녁을 주려고 지역기업체에 지원을 약속받아 양질의 간식과 저녁을 제공했어요.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매달 특별행사를 마련하여 아이들의 가족까지 참여시켰지요.” 

캐나다의 노인들 또한 행복하게 산다고 한다. 그 나라의 복지는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세금을 많이 내고 노후에 돌려받는 것이 정착되어 이상적인 노후생활을 영위하도록 국가가 지원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 여러 가지 한국이 처한 어려움을 보고 안타까운 생각이 간절한데 현재 장모님 가까운 곳에 살기에 어르신들이 겪고 있는 노인 문제에 대해 특히 깊은 관심이 간다고 했다. 사회적 취약계층인 노인층과 장애인에 대한 복지를 늘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국가의 평화와 관련해서는 민간교류가 중요하다고 했다. 국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해야 남북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데 당사자인 남북이 서로 화해할 일을 제3의 국가 개입으로 풀려하니 풀릴 수가 없다는 견해였다. 노사 간의 분쟁에 대해서도 효율보다는 신실(신뢰와 진실)을 중요시해야 관계가 건강해진다고 했다. 

9.11 테러 직후, 미국 정부기관이 메노나이트 대학교의 연구소에 요청하여 치유목적으로 만든 책, 김복기 목사가 번역했다.
9.11 테러 직후, 미국 정부기관이 메노나이트 대학교의 연구소에 요청하여 치유목적으로 만든 책, 김복기 목사가 번역했다.

성직자로 살아가는 데 생활의 어려움은 없냐는 개인적인 질문에 “가끔 아내가 아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못해 안타까워할 때, 저도 사람인지라 조금 흔들릴 때도 있어요. 하지만 선교사는 말보다는 사는 모습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라며 웃으며 답하는 솔직함에 인간적인 면과 함께 그의 신념 또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교단은 공동체와 평화를 지향하는 교리를 바탕으로 활동한다고 설명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인간존중과 더불어, 함께 사는 방법을 실행해가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장점으로는 공동체의 분별과 지혜를 꼽았다. 특히 노인 문제가 심각한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런지 모른다.

그는 현재 사람 중심의 생각을 담은 ‘봄내평화시민센터’ 건립을 추진 중인데. 주로 학교폭력과 가족 간의 갈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센터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절에 가서 스님과 대화도 합니다. 인간에겐 모두 신이 있잖아요. 어떤 종교를 가졌건, 돈을 숭배하건, 자신을 믿건, 누구에게나 다른 방식으로 신이 존재하지요.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됩니다.” 

교리를 뛰어넘어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평화를 향한 초월적 열망을 느낄 수 있어 가슴 따뜻하게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평화를 빕니다”라고 건네는 한마디에, 평화에 대한 거시적 생각을 잔잔히 쪼개어 마음속으로 가져올 수 있게 도와준 것 같아 더없이 감사했다. 캐나다 시민권자로서 편안한 삶을 두고 부모님 걱정에 한국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당분간 한국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그가 따뜻한 마음으로 펼치는 평화나눔을 계기로 한국사회도 천국으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래본다.

편현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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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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