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막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카톡 하나가 들어왔다. 

“조국 사퇴보다 설리의 자살이 엄청난 충격입니다. 젊은 여성들이 비통해하네요. 한남들이 설리를 죽였다고, 큰딸이 비통해하며, 혜화동 집회에 간다고 오후 내내 울먹이고 그랬어요. 베르테르 효과도 있을 것 같아요. 추위만큼 스산하네요, 세상이.” 

설리? 누군지 모른다고 했더니 ‘노브라’, ‘여자도 동등하다’ 등 여성 옹호 발언과 행동을 많이 했다고, 그래서 반대자의 악플에 시달렸던 연예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노브라’ 사진이 화제가 됐는지 한 여성으로부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난 별 시시한 질문도 다 한다는 표정으로 답을 했었다. “난 집에 들어가자마자 다 벗고 지내는데…, 노브라가 더 편한 거 아닌가?” 그때도 여전히 나는 그의 이름을 새기지 못했다. 내겐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취향이어서 특별하게 화제가 되고 말고 할 ‘뉴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리는 살아생전 그렇게 내 기억에서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설리의 죽음이 전해지고 하루 뒤 김지혜 기자가 쓴 ‘설리, 가장 폭력적인 곳에서 가장 전투적으로 싸웠던..’[기자메모]을 포털에서 읽게 되었다. 비보가 전해진 직후부터 설리가 남긴 치열한 분투의 기록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는 일종의 ‘때늦은 헌사’였다. 언론은 약자의 신음소리에 귀를 닫았다고 자성했고 남성은 여성의 아픔에 무감각했다고 지적했다.

설리는 세계 여성의 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당당히 기념하며 싸웠고, 약자와 약자가 연대하며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그에게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그 어떤 연대의 힘도 주지 못했던 ‘한남’ 중 하나였다. 그 기사에 달린,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댓글을 읽는 것으로 ‘때늦은 연대’를 대신할 뿐이었다. 

@“이 기사 내리지 말아 주세요. 설리가 봤으면 좋겠어서요.” @“아이돌에 관심 가질만한 나이가 아니므로 설리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노브라, 외모 평가 등에 대해 소신을 밝히는 기사를 보곤, 같은 여성으로서 나 자신 조금은 부끄럽단 생각이 들었다. 탈브라를 지지하지만 노브라로 밖에 나가본 적이 없고, 외모를 평가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론 겉모습을 평가하곤 했기에.” @“여성들이여 객체가 되지 말자. 연대하여 자유로워지자.” @“집에만 오면 브래지어부터 벗어버리는 와이프. 난 설리가 노브라 한 사진을 보고선 뭔가 잠깐 멍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 이것도 편견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편견이나 선입견을 깨려고 나오는 이들의 말에 난 관심을 가지고 호응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왜 꼭 이런 선택 후에나 우리는 따뜻해지는 걸까?” @“변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은 가장 많은 것들을 누린, 누리고 있는 자들이다.” @“설리야, 난 45세 아줌마야. 네 덕분에 브라를 안 하고 외출할 수 있구나. 말로 표현은 안 했지만 네가 참 용기 있고, 고맙더라. 나에게 작은 파문을 던진 거지. 굴레 속에 갇혀 있다가 벗어난 느낌을 갖게 해 줬어. 그래서 너의 죽음이 더 슬프게 다가왔나 봐. 부디 아프지 말고 따뜻한 곳에서 행복하길 빌게.” @“기자님들, 악플러님들 다들 반성하시기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 틀린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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