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그믐달시낭송콘서트 대표)
김진규 (그믐달시낭송콘서트 대표)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김용택의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의 첫 행과 둘째 행이다. 시어가 첫 행부터 와락 다짜고짜, 저릿저릿 끼쳐온다. 김용택에게 이별이 거하는 곳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손끝’이다. 그리고 서러움은 먼 데 있다. 그 먼 곳에 있는 서러움이, 내게로 온다는 것이다.

이별이 생겨나는 곳은, 서로 마주잡은 손이 풀어진 내 손끝과 그대 손 끝 ‘사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서가 느끼는 이별은, 정작 손끝에 있지 않을까.

우리말은 아니지만, 이별을 뜻하는 한자 중에 예쁘고 아리는 낱말이 하나 있다. 몌별(袂別)! 몌는 ‘소맷자락’, 별은 ‘별리(이별)’를 뜻한다. ‘부여잡은 소맷자락 못 놓은 채 헤어지기 어려운 이별’을 가리키는 말이다.

헤어져야 할 수밖에 없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이젠 보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부여잡은 그대의 소맷자락을 미처 놓을 줄 모른 채…, 참으로 헤어지기 어려운 이별이 바로 몌별이다. 인생의 황혼녘에서 헤어지기 어려운 남매처럼. 하여 이별은 손끝에도, 그리고 소맷자락에도 있겠다.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 <하노버 스트리트>에서도, 이별은 연인의 손끝에 남을 것 같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나온다. 스토리는 생략하고. 마지막 장면은 이렇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이 마주보고 걸어온다. 둘은 걸어가던 속도 그대로 스쳐 지난다. 지나치는 순간, 그 짧은 순간에 두 사람은 손을 잡는다. 그 순간에도 걸음의 속도는 줄지 않는다. 연인의 두 손은, 걸어가는 속도만큼 뒤로 간다. 마지막 순간에는 잡았던 손이 풀리고 손바닥 전체가 맞닿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에도 야속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손바닥의 맞닿은 면이 점점 줄어들다가 중지와 중지에서 두 손은 끝내 떨어진다.

이별은 내 손끝과 그대 손끝 사이에서 생겨나지만, 연인의 가슴에 이별은, 끝내 제 손끝에 남아 가슴을 저민다. 그래서 이별은 손끝에 있다고 했다.

이청준은 소설 《광장》에서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사랑이 먼저란다. 외로움이 만든 사람의 몸이, 서로 만나 사랑한다. 그리고 헤어졌다. 외로움은 다시 깊어져 하얀 슬픔은 서럽게 번져만 간다. 지나간, 아련한 사랑은 서글프다. 그래서 서글픈 사랑은 먼 곳에 있다가도 어느 순간 불현듯, 불쑥 돋는다.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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