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가을은 노벨상의 계절이기도 하다. 1901년부터 상을 수여하기 시작해 올해가 119회째인 만큼 그 권위와 명성은 가을 단풍만큼 화려하다. 수상자들의 얼굴이 뉴스를 도배하고 그들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화제에 오름과 동시에 가을축제에서 제외된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또한 빠지지 않는다. 

올해 노벨상 발표에서 특히 관심을 끈 이는 존 구디너프(미국·97), 스탠리 휘팅엄(영국·78)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71) 박사였다. 과학기술 강국 일본의 25번째 노벨상 수상자다. 대학원 졸업 후 화학기업에 입사해 대학이 아닌 기업에서 줄곧 리튬이온베터리에 매진한 연구자다. 

“일본의 과학기술력, 기술혁신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쓸데없는 일을 잔뜩 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 무엇에 쓸 수 있는지와는 별도로, 자신의 호기심에 근거해 새로운 현상을 열심히 찾아낼 필요가 있다.”

기자들의 질문은 평범했지만 답변은 노벨상 수상자답게 비범했다.

그의 직장은 원래 섬유회사였지만, 요시노의 호기심을 따라 리튬이온 전지를 개발하게 됐다. 요시노가 폴리아세틸렌(PA)을 응용해 새로운 사업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가운데 전지의 음극 재료에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폭을 넓힌 결과다. 직원 요시노는 자신의 호기심을 포기하지 않았고 기업은 도움이 될지 여부를 알지도 못하는 그의 연구를 유연하게 지원해 주었다. 그는 전지 제조사의 연구자였다면 리튬이온 전지를 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노벨상은 “나는 이 길로 가고 싶다”는 호기심 충만한 ‘나침반 인간’에게 주는 위로다. “네가 이 길로 갔으면 좋겠다”며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조련한 ‘안테나 인간’을 위한 상이 아니다. 인내심이 바닥날 정도로 오랜 시간에 걸쳐 새로운 것을 발견해낸 것에 대한 격려이지, 누구보다 빨리 낸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호기심이 만드는 길은 미로와 흡사해서 어디로 이어질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할지 판단도 서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있는 자는 벽에 부딪혔을 때 쓰러지는 자신을 세우며 스스로에게 ‘어떻게든 될 거야’ 속삭이며 나침반을 믿고 캄캄한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런 ‘루저 마인드’는 어둠 속에서 부러워하며 열등감과 싸울 게 분명하다. 아무것도 수확하지 못한 빈들에 서서 ‘왜 노벨상을 못 받나?’며 탄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벨상을 타내라는 정부와 여론의 압력에 굴복해 연구를 생산하려는 자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규경 시인이 말하는 ‘용기’가 없어 보이는 한국인에게 노벨상이 기적처럼 내려지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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