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밤 11시,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버스승차장. 모든 공항버스 매표소는 문을 닫았고 티켓은 무인발권기에서 신용카드로만 발권할 수 있는 상황. 한 청년이 키오스크(kiosk-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정보 단말기)에서 전자결제로 발권하고 대구행 버스에 오른다. 버스 안 좌석은 텅텅 비어 있었지만 수중에 현금만 있는 노인 10여 명은 버스에 오르지 못한다. 버스기사한테 현금을 내밀어도 규정을 내세워 태워주질 않는다. 노인 승객들을 뒤로한 채 공항을 빠져나가는 버스 안에서 청년은 복작한 심경으로 자문한다. “이게 차별이 아니면 도대체 뭘까?”

기차표 매진이 일상인 주말. KTX앱으로 입석표를 예매한 청년은 제시간에 나타나 개찰구를 통과하지만 디지털 문맹자는 입석표를 끊기 위해 두 시간 전 역에 나와 몸 고생, 마음고생을 해야 한다. 

제주항공은 국내선 공항 카운터에서 탑승권을 발급받는 승객에게 1인당 3천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기계사용이 서툴러 카운터 직원에게 탑승권 발급을 ‘희망하는’ 고객에게 수수료를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하며 그들이 내세운 취지는 ‘스마트 공항’ 구현이다(물론, VIP승객한테는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무인화·자동화 열풍을 가장 먼저 환영하고 개방한 곳은 패스트푸드 전문점. 전체 매장 중 60% 이상이 키오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맥도날드 매장의 경우, 청년층도 헷갈릴 정도로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불만이 많은 걸 보면 배고픔을 해결하러 들어간 디지털 문맹자에게 햄버거는 더 이상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대형마트 계산대의 긴 줄을 피해 들어선 카드전용 셀프계산대. 이전에 두 번 사용해본 적이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아주 가끔씩 이용해서 그런지 이용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서다. 할 수 없이 옆의 직원한테 도움을 청할 땐 영락없는 디지털 문맹자의 어색한 미소도 건네야 한다. 

‘디지털금융 혁신’을 부르짖는 은행에서도 장기 노인 이용자의 불만이나 불평, 상대적 박탈감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창구를 찾는 ‘아날로그’ 고객은 인터넷·모바일 뱅킹 이용자보다 높은 이체 수수료를 내고, 낮은 예금금리를 적용받는다. 인력감축에 돌입한 은행은 디지털과 모바일 플랫폼으로 갈아타면서 점포와 현금자동인출기(ATM)를 가파른 속도로 줄여가고 있다. 텔레뱅킹도 어렵게 배웠는데 ‘하루만 지나면 까먹는 게’ 일상인 고객들에게 스마트폰을 이용한 이체는 또 얼마나 높은 장벽일까?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지급결제수단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행창구를 이용하지 않고 계좌이체를 한 경험이 있는 70대 이상은 10명 중 3명이 안 되고(27.8%), 신용카드를 이용한 적이 있는 사람은 10명 중 4명 남짓(42.8%)에 불과했다. 선불카드·전자화폐 이용률(1.2%)은 수치 자체가 거의 무의미해서 SF 영화에나 등장하는 결제방식으로 보일 정도다. 

키오스크 세상이다. 지금의 무인화·자동화는 발권·주문에 머물고 있지만 조만간 거의 모든 분야로 확산될 것이다. 무인시스템을 만드는 장비 또한 무인화·자동화 공정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편리함과 익숙함을 쫓고 기술진보를 외치는 사이 우리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기업은 호황을 누릴 것이다. 틀림없는 단 하나의 진실이다.

디지털 사회의 소외, 늙게 되면 예외 없다…,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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