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로랑 베그가 쓴 책의 제목이다. 제목 자체가 도발적이다. 왜냐하면 도덕적인 인간이 좋은 사회를 만들고, 만들어가는 게 일반적인 상식인데, 로랑 베그는 반대로 도덕적 인간이 나쁜 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 책에는 특유의 질문과 통찰이 있다. 만약 인간이 악한 시스템 속에 있다면, 인간은 도덕적 의지를 발현하여 스스로 그 악을 타파하고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는 책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자기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하지만 비극적인 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인간이 악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와 시스템 속 인간은 자신의 사고와 행동방식이 부지불식간에 그것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사과라 하더라도 썩은 상자 속 사과가 썩기 마련이듯이, 썩은 시스템 속 인간도 그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악의 근원을 알지 못한 채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나치 전위대들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반인륜적인 사건, 특히 나치 독일의 아이히만이 독가스실에 갇혀 있는 유대인들을 보면서도 아무 죄의식 없이 독가스 버튼을 눌러 수많은 유대인을 살해한 경우처럼. 그리고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드 교도소에서 벌어진 미군의 이라크 포로학대와 같은 반인륜적인 사건, 201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 등에서 우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잘못된 시스템 안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믿기 힘든 반인륜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 망언과 거짓말, 가짜 뉴스와 허위 사실들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조작하고, 악의적으로 유포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반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한 사람들은 원래부터 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할 것일까? 대답은 분명 ‘아니다’이다. 그들도 아주 평범하고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자처했던 사람들이다. 다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자처하고 있다 하더라도 몇 가지 원인으로 반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하게 된다. 잘못된 권위와 시스템 악, 부당한 명령과 권력에 저항하기에는 나약한 인간의 허약함과 양면성,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지배자들이 퍼뜨리는 이데올로기의 주술에 걸려들거나 현실적 권세와 힘을 가진 사람을 내 생활의 준거로 삼고자 하는 복종의식, ‘나만 피해 보는 것 아니냐’ 또는 ‘나만 피해 안보면 되지’ 하는 기회주의와 자폐적 이기주의가 그런 원인이다.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도덕적인 인간이 많을수록 좋은 사회가 되는 조건은 무엇일까? 위에서 언급한 반인륜적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 조건은 무엇일까? 그 답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 악이 작동되지 않게 만들거나, 잘못된 권위나 힘에 복종하지 않게 만드는 기제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필자는 그 답을 시민 공론장의 활성화에서 찾고 싶다. 도덕적인 민주시민을 교육하는 것과 함께 민주시민이 함께 모여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론장이 있어야 한다. 도덕적 인간이라 하더라도 자의든 타의든 자신을 객체로 만들기 때문에 나약해질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주체가 되면 시스템 악에 복종하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이 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공론장을 통해 부당한 명령과 권위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시민-의원-공무원 각 주체들의 역할과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시민 스스로는 참여의 왜곡과 불균형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주민참여예산제, 주민자치회, 공론화위원회 등을 통해 참여의 바람이 다시 불고 있지만 참여하는 사람만 여전히 참여하는 참여의 왜곡 및 불균형을 시민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의원들은 의회라는 공간에 머물지 말고, 의회 공간 자체를 제도적·공식적 공론의 장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또한 공무원은 자신들이 정책을 생산하고 집행하면 된다는 인식을 과감히 버리고, 공론장에서 나오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행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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