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청 1층 로비에 가본 사람이라면 규모에 놀라 절로 눈길을 보내게 되는 대형 현수막이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높이는 2층부터 1층에 이르고 넓이는 시청 로비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니 실내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크기다. 어떤 그림이나 강렬한 색채의 디자인도 없이 흰 바탕의 천에 그냥 검은색 글자만 빽빽하게 담았다. 현수막이 걸린 형상만으로도 무언가 절절히 호소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자치분권 선언문’이 담겨 있는 현수막이다.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현수막에 담긴 글은 선언문이라기보다는 호소문이나 제안문에 가깝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2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완성하는 길은 지방자치에 있다고 생각한 국내 여러 인사와 단체가 춘천에 모여 지방자치와 분권을 열어가겠다며 내놓은 선언문의 후속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롭게 선언을 하기보다는 지난번에 선언한 내용을 오롯이 완수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더 빨리 일을 추진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현수막에 담긴 문장을 공식 제안으로 채택한 지난 13일 춘천시 주최의 행사 제목도 그런 이유로 ‘자치분권 춘천선언 AGAIN 2002’다.

되돌아보면 1987년 민주항쟁으로 군사독재가 형식적으로는 종식되었지만 이른바 ‘문민’정부가 그 뒤로 2차례나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온전한 민주국가가 되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중앙집권형 권력구조에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나라를 운영하는 몇 사람의 권력자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 않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중앙집권형 권력구조 속에서의 선거는 주민이나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반대로 몇 사람 권력자의 ‘꼬붕’이 될 뿐이다. 선거 공천권이 중앙에 있게 되면 국회나 지방의회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중앙의 권력자에게 줄을 서기 마련이다. 여기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줄을 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속하기 위해 다시 주민이나 국민을 줄 세우기 한다. 권력이 결코 국민으로부터 나올 수 없는 구도다. 자치분권을 다시 선언하고, 다시 호소해야 하는 절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앙집권형 권력구도 속에서 치를 선거를 통해 자신의 바람이 전혀 제도권 정치에 반영이 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국민이 선택하게 되는 길은 ‘정치 무관심’이나 ‘정치 혐오’다. 불행하게도 상황이 이쯤 되면 국민의 삶과 전혀 관련 없는 ‘그들만의’ 권력 싸움만 남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이 딱 그렇다. 정쟁에 골몰한 나머지 예산안 하나, 절실한 민생법안 하나 제 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 수도권 이외 지역은 인구소멸에 의한 지역소멸을 이야기해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

대한민국이 말 그대로의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 아름다운 국가가 되려면 제대로 된 자치분권을 이뤄내야만 한다. 중앙 집중의 패거리 정치로부터 벗어나 개인이 모여 만든 정강과 정책이 경쟁하는 정치로 전환되어야 한다. 다행히 ‘연방제에 준하는 자치 분권국가’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건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9월 11일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국회에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지방이양일괄법안’, ‘지방재정분권의 강화’, ‘자치경찰제 실시’ 등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법률안이 진작부터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정말 내가 주인인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면 이제부터라도 이런 자치분권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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