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그믐달시낭송콘서트 대표)
김진규 (그믐달시낭송콘서트 대표)

그믐달.

“너무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의 달.”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 “보아주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 “객창한등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는 달.”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 트리고 우는 청상과수와도 같은 달.” “공중에서 번듯하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이는 달.” “한 있는 사람이나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 그리고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달.” “가장 정 있는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이 많이 보아 주는 달.”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하면 그 달로 태어나고 싶은 달.”

1925년 만 스물셋의 나도향이 식민지의 하늘에 뜬 그믐달을 보며 느낀 정서가 저러했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저 가련한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촉촉한 나도향의 <그믐달>을 늘 읊조려왔다. 열등감과 패배감에 샐그러져 있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만, 술을 한 잔 기울일 때에도 어쩌다 한 번씩 중얼거리게 된다. 살다 보면 가슴에 묻어둔 눈물이 하늘의 별처럼 글썽거리는 날도 있고, 숨기고 감추고 묻어두어도 마침내는 이리 드러나는 까닭모를 슬픔에 그만 젖어 들 때도 있지 않는가…. 나도향의 산문 <그믐달>을 시처럼 읽어보고 싶었다. 지난해 11월 5일 처음으로 시낭송회를 열 때, “그럼 시낭송회 이름은 무엇으로 지어요?”라는 물음에 아무 생각 없이 “그믐달”이라고 했다. 하여 ‘그믐달시낭송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매달 이루어지는 시낭송회는, 이제 1년을 넘어섰다.

뜻밖의 메아리라 해도 좋고, 황금의 메아리라고 해도 좋다. 여느 시낭송대회라면 모를까 <제 4회 ‘시와소리’ 전국문학낭송대회>라면 혹여 시가 아닌, 산문이더라도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낭송대회를 주최하는 대전시마을문학회에 문의했다. 가능하단다. 뜻밖의 허락이다. 대상 수상자도 참여가 가능한 대회니, 더욱 다행한 일. 황금의 메아리다. 함민복 시인의 산문 <눈물은 왜 짠가>는 독자가 시로 읽어 시가 되었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문이었던 <서시>역시 시로 읽어 시가 되지 않았는가. 나도향의 <그믐달>도 시로 읽히길 바라왔다. 더 많은 이들에게 소리로 읽히기 바란다.

이상화 시인이 잡지 《무궁화》에서 스스로 밝힌 자신의 대표작을 <역천>이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웬일인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시낭송가는 시인이 창조한 아름다운 시라는 꽃을 물어 나르는 벌과 나비다. 반기문전국시낭송대회에서 <역천>으로 대상을 수상한 것보다는, 시가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될 듯해 기쁘다. 이번 ‘시와소리 문학낭송 경연대회’에서 나도향의 산문 <그믐달>의 대상 수상도 그러하다. 뜻밖의 선물이다.

그믐달시낭송콘서트의 기획자로서, <그믐달>이라는 산문으로 문학낭송 경연대회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고 <그믐달>이 널리 읽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다행한 일이다. ‘그믐달시낭송콘서트’가 ‘행복하다’의 주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히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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