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인 ‘응웬 티 쩐쩐’ 그리고 한국인 박서영

이르면 내년 10월부터 가정폭력을 저지를 경우, 외국인 초청 결혼이 불가능해진다.

지난 11월 22일, 여성가족부는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인권 침해적 국제결혼 예방, 가정폭력 신속대응, 체류안정 지원 내용 등이 담긴 ‘결혼이주여성 인권 보호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노란 은행잎들이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던 늦가을 오후,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인터뷰 약속 장소로 향했다. 혼자 생각하기를,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많이 듣겠구나, 눈물이 나면 어떡하지? 같이 울어야 하나?’ 하면서.

박서영 씨.      사진 제공=박서영
박서영 씨.       사진 제공=박서영

사람들은 가끔, 혹은 자주 ‘다름’과 ‘틀림’을 같은 낱말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날의 나처럼, 대개의 결혼이민여성은 왠지 조금이라도 불행할 것만 같아서 그래서 연민의 감정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그런, 자기 변명식의 오류 말이다. 그래서 맑은 얼굴의, 코스모스 같고, 청초한 수련도 같고, 키 작은 패랭이꽃처럼도 보이는 그가 얼굴에 담뿍 미소를 담고 카페에 들어섰을 때, 솔직히 속으로 조금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이제 갓 서른인 박서영 씨. 그는 오직 한국인 남편 한 사람만 철석같이 믿고 먼 이국으로 시집을 온 베트남 여인 ‘응웬 티 쩐쩐’이다. 그는 천사 같은 시어머니와 예쁜 두 딸, 무뚝뚝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와 함께 춘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젊은 안주인이고, 결혼이민여성이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2010년 1월, 한국에 첫발을 디딘 그는 한국의 설경에 반해버렸다고 했다. “한국은 너무 아름다웠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본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요.” 춘천으로 오는 길에 그는 남편에게 물었단다. “저 가로수들은 다 죽은 것 같은데 왜 그대로 놔두지요?” 그녀의 눈에는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풍경이 낯설기만 했고 그런 그에게 남편은 나무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고, 봄이 되면 다시 잎이 새로 나고, 꽃이 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떨고 있는 자신이 그 나무들 같았다고 했다. “나도 저 나무들처럼, 봄이 되면 다시 새잎이 나고 꽃이 피는 저 나무들처럼, 이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녀는 그렇게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한 생각은 ‘너무 춥다!’는 것이었어요. 왜 두렵지 않았겠어요. 그렇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니까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지요.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시부모님은 세상에 다시없을 만큼 저를 아껴주시고 남편은 책임감이 강하고 따뜻하고 성실한 사람이니까요.” 

그는 가정폭력으로 힘들어하는 결혼이민여성들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너무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주변의 시선이 좀 그렇지요. 우리를 돈에 팔려 온 사람들처럼 그렇게 보는 시선들요. 우리 엄마는 항상 말씀하세요. 남편한테 잘해라, 저런 사람 세상에 없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한국으로 온 친한 언니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한국으로 시집을 온 언니가 잘 알아본 다음 소개한 사람이라 믿고 만났어요. 저는 그때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남편의 첫인상은…,(웃음) 힙합?” 그에게 남편은 힙합스럽게 보였다고 했다. “귀걸이에 목걸이에…, 그런데 너무 귀여웠어요.” 결혼 생각이 전혀 없던 남편은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응웬 티 쩐쩐’ 씨를 만나러 베트남으로 갔다. 두 사람 모두 첫눈에 반해 미룰 것 없이 서둘러 결혼을 했고 한국으로 온 그에게 시부모님은 친부모와 다름없이 대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너무 잘해주셨어요. 아버지는 말이 서툰 저를 보면 ‘씨익’ 웃으셧지요. 첫 아이를 가졌을 때는 뭐가 먹고 싶다고 말하기 무섭게 사다 주시고 외식을 하자 하시고….” 그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지난여름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시아버님은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 너무 보고 싶어요!” 그는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첫딸을 낳고 베트남에서 친정 부모님이 오셨어요. 다른 곳에 숙소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어머님께서 ‘그런 법이 어딨냐! 당장 집으로 모시라’고 해서 들어오셨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집에서 친정 부모님이 함께 살고 계세요. 더울 때는 한국으로 오시고 추울 때는 베트남으로 들어가시고….” 조금 어설픈 질문 같았지만, 그에게 베트남이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큰오빠가 많이 보고 싶어요. 제가 7남매 중 다섯짼데요, 중학교 때 큰 오빠가 자전거를 사줬어요. 그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녔지요. 지금도 전화하면 오빠는 언제 오냐고, 왜 안 오냐고 물어요.” 

공항에서 친정부모님을 기다리는 동안 가족과 ‘찰칵’.사진 제공=박서영
공항에서 친정부모님을 기다리는 동안 가족과 ‘찰칵’.      사진 제공=박서영

그는 베트남 친구들이 그립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만난 언니 이모들이 너무 좋아서 전혀 외롭지 않다고 했다. 강원대학교 학생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동료들과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세요. 저는 한 번도 나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어요. 가끔 결혼이민 여성이 나쁜 일을 당했다는 뉴스를 볼 때면 그냥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어요. 그들도 똑같이 귀한 사람들이니까, 조금 마음에 안 들더라도 예쁘게 봐주셨으면, 그리고 무시하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저희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고, 당당하게 세금도 내면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 중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고, 한식 요리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고 했다. 

“조금 어려웠지만 전 한국어로 면허시험을 봤어요. 저처럼 다른 결혼이민여성들도 많이 노력하고 살 겁니다. 그들을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전 다문화라는 말도 싫어요. 그 말속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들어 있는 것 같거든요. 내년에는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갈 거예요. 우리의 결혼도 기념할 겸 해서 시월에 다녀오려고요.”

그는 아직도 남편을 보면 설렌다고 했다. 무뚝뚝하고 말이 너무 없어 답답한 것 빼고는 너무 좋은 남편과 가끔은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그.

손을 흔들며 돌아서는 그를 보며 상상했다.

깊어가는 가을밤, 남편의 손을 잡고 소녀처럼 따뜻한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을 그의 모습을. 그리고 오늘밤, 이 깊어가는 가을밤, 대한민국의 모든 남편과 아내들이 그들처럼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기를.

이경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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