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지난 칼럼에 이어, 농업농촌문제는 국지적이거나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역설하고자 한다. 시민들이 함께 지켜주고 함께 개혁해야 하는 까닭은, 대한민국 전체가 직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궁금한 게 있어요. 왜 새삼스럽게 개발도상국 포기 선언을 한 거죠? 포기선언에 농민들은 왜 반발하죠?

여러 경제지표를 봐도 이미 선진국 기준을 넘어선 것은 맞죠. 자유무역만 추구하면 개발도상국의 취약한 산업부문이 무너질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있어요. 우리는 농업부문에 한해서 보호 장치가 있었는데, 이번에 그걸 포기한 거죠. 그러니 농민들이 반발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농업도 스스로 경쟁력을 갖춰야죠. 언제까지나 보호만 받을 수는 없지 않나요? 

농민들의 주장은 간단해요. 선진국이라면 선진국 수준으로 농업을 지켜라, 이겁니다. 선진국은 자국농업을 더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어요.

네? 선진국이 그렇다고요? 안 믿어지는데요?

WTO든 FTA든 자유무역을 추구하죠. 국가 간 교역의 관세율을 낮추자는 것이고, 가격 문제를 규제하는 겁니다. 하지만 보조금 같은 비교역적인 부분은 건드리지 않아요. 유럽 농민들도 농산물 자체로는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없어요. 대신 국가가 농민에게 보조금을 지불하죠. 

결국 농민들 주장은 보조금을 더 달라는 소리인가요? 

(화를 참으며) 예를 들어 볼게요. 쌀 관세율이 513%라고는 해도 수입을 막지 못해요. 우리 쌀 생산량의 10% 정도 물량을 외국에서 거의 관세 없이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거든요. 보호장치에 이미 큰 구멍이 뚫려 있었죠. 그러니 시중의 막걸리나 쌀과자의 99%는 수입쌀로 만들죠. 앞으로 관세율도 낮아지고 의무 물량도 많아질 겁니다. 무역에서 쌀 자체의 가격경쟁력은 없어요. 그렇다고 쌀 농업을 지킬만한 가치가 없나요? 가격경쟁력 없으면 논들이 죄다 사라져도 되나요?

그건 비약이죠. 어느 정도는 지켜야한다고 봐요.

그렇죠? 그런데 이 ‘빌어먹을’ 글로벌 자유무역 시스템에서는, 농업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보조금이란 말입니다. 보조금·직불금·농민수당·기본소득 등등 이름이 뭐든 간에 농업을 지키는 정당한 보호장치죠. 선진국 농업은 농가소득의 최대 60%를 국가가 직접 지불하니 버틸 수 있죠. 우리나라는 지원 비율이 한자리 수준이니, 유일하고 정당한 방법을 안 쓰는 거나 마찬가지죠. 나머지 빈 농가살림은 농사지어 팔아서 알아서 채우라는 건데, 그러면서 정부는 수입농산물 개방을 가속화하겠다니 농민들 울화통이 터지지 않겠어요? 왜 우리나라 농업농촌은 선진국처럼 못 되냐고요? 단 한 번도 선진국 농민들처럼 대우한 적 없어요!

그래도 납득이 되지는 않아요. 왜 농업을 대우하고 보호해야 하는지.

키워드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입니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농업이 시장경제에 내동댕이쳐졌고, 농촌은 난개발로 어지럽기만 하죠. 농업농촌의 공익성? 쉽게 와 닿지는 않으실 겁니다. 아까 “어느 정도는 지켜야 한다”고 했죠? 그게 출발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강원도와 춘천의 비전을 위해서는, 지켜야 할 수준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세금 지출은 정당한 겁니다. 시민들이 동의하면 국가가 대행하는 것이겠지요.

간단한 문제가 아니군요.

어쩌면 간단합니다. 시민들의 동의와 지지가 확고해지면 풀립니다. 슬프지만 그때까지 농민들은 고통을 계속 감수해야 되겠죠. 독일 시민들의 자국 농업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실래요? 번역이 좀 어색하고 정서가 다르겠지만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겁니다.

①농업은 우리의 식량을 보장한다 ②농업은 우리 국민산업의 기반이 된다 ③농업은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 ④농업은 우리의 문화경관을 보존한다 ⑤농업은 마을과 농촌공간을 유지한다 ⑥농업은 환경을 책임감 있게 다룬다 ⑦농업은 국민의 휴양공간을 만들어준다 ⑧농업은 값비싼 공업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⑨농업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바지 한다 ⑩농업은 흥미로운 직종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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