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독일과 국경을 이루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브라우나우암인(Braunau am Inn)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은 1889년 히틀러가 태어나 겨우 몇 개월 살았다는 이유로 Nazi(NAtional soZIalist, 국가사회주의자) 추종자들에게 성지가 된 곳이다. 그곳엔 경고와 기억을 위한 글을 새겨놓은 사각 모양의 비석이 비스듬히 서서 방문객을 맞는다. 

Für Frieden Freiheit und Demokratie, Nie wieder Faschismus, Millionen Tote Mahnen. 
평화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하여, 다시는 파시즘이 반복되지 않기를, 수백만 희생자들이 경고한다.

히틀러 생가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나치 소유였고 종전 후에는 도서관으로 쓰이다가 원소유주에게 반환됐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히틀러 생가가 극우 세력의 성지가 되지 않도록 1972년 건물을 임차해 복지시설로 써 왔다. 2011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히틀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개·보수를 추진했으나 원소유주가 반대했다. 포머(Pommer) 가문은 건물을 팔라는 정부 제안도 거절해 히틀러 생가는 상당기간 텅 빈 상태로 방치돼왔다.

2016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건물을 강제 매입하는 법을 만들어 소유권을 확보하고 정부 보상금이 적다며 소송을 제기한 원소유주와의 법적 분쟁도 지난 8월 마무리했다.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낸 오스트리아 정부는 건물을 철거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정치권과 역사학계 반발에 부딪혔다.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경찰서로 리모델링. 다시는 국가사회주의(나치즘)를 기념하는 장소로 사용되지 않도록 강력한 신호를 보내기 위한 그들의 기발함에 미소가 절로 난다. 

나치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독일은 나치를 인정하거나 찬양하는 행위를 법으로 엄격히 금지한다. 그 부분만큼은 ‘표현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집회 등에서 나치를 승인하거나 찬양하면 최대 징역 3년 형에 처해진다. 인종 학살(Holocaust)을 부인하면 최대 5년간 감옥살이를 감수해야 한다. 나치의 상징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갈고리 모양 십자가) 등을 사용해도 최대 징역 3년형에 처할 수 있다. 고양이에게 나치 식으로 경례시킨 자를 구금한 오스트리아 법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경찰서를 바로 코앞에 두고 나치를 찬양할 바보들이 있을까 싶다. 

이런 역발상 전략은 캐나다 밴쿠버의 한 편의점 주인이 1985년 처음 고안한 아이디어를 지하철역 문제 해결에 활용한 캐나다 몬트리올 시의 지혜를 떠올리게 한다. 1990년대 몬트리올 지하철역은 비행 청소년들이 모여드는 아지트에 가까웠다. 역에서 방송해주는 신나는 대중음악에 몸을 흔들던 그들의 에너지가 부정승차와 낙서 등 자잘한 일탈로 넘어가곤 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몬트리올 시가 꺼내 든 카드는 단속이 아니라 음악 교체였다. 매일 틀어주던 팝송 대신 클래식 음악을 방송하자 비행 청소년들은 ‘장송곡 같은’ 그 음악이 듣기 싫어 지하철역을 떠나갔다. 뿐만 아니라 육체적, 언어적 희롱 행위 등 비행을 저지르려는 사람들을 멈칫하게 만드는 범죄예방 효과도 있었다. 몬트리올의 성공 사례는 현재 뉴욕, 런던, 서울 등 전 세계 도시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활용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네오나치의 성지로 꼽혔던 히틀러 생가에 나치 추종 세력이 찾아와 꽃을 바치고, “우리는 갈색(나치의 상징색)으로 남을 것”, ‘잘 자라, 좌파’ 등이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가는 곧바로 경찰서 유치장으로 안내되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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