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자치분권 춘천선언: Again 2002’가 지난 11월 13일 춘천시청에서 열렸다. 2002년에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명제 아래 전국의 학계·언론단체·시민대표들이 모여 지방분권을 촉구한 선언을 다시 되새기고 실천하기 위한 행사였다. 올해는 자치와 분권이 조합된 ’자치분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이른바 수직적 분권(중앙의 권한과 권력을 지방에 이양)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주권적 자기 통치를 지향하는 자치를 더한 것이다. 선언의 도입부와 7개의 선언문 내용의 핵심은 지역의 다양성을 조화롭게 견지하면서 지역주권 및 시민주권의 시대, 협치의 시대, 포용의 시대, 지방소생의 시대 등으로 바꿔가자는 것이다. 규범적이면서 실천적인 선언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치분권 춘천선언’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분권을 (중앙과 지방) 정부 간 관계에 초점을 둔 분권으로 개념화하거나, 자치를 지역의회와 자치단체장을 직선제로 선출한다는 제도적 의미로 획일화한다면 진정한 자치분권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획일적 분권과 자치는 지역에 잠재해 있는 저마다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특징을 억압하고, 각 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우(遇)를 범할 수 있다. 분권과 자치의 개념을 정하고, 그 개념 속에 체계를 정한 후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다 보면, 지역 간의 특이성과 고유성이라는 차이는 사라지게 되며, 자치분권은 또 다른 획일화된 모습을 띨 수 있다. 자치분권은 ‘중앙과 지역의 대등한 관계’라는 관점에서 수직적 분권이 아닌 수평적 분권으로, 지역의 시민들이 주권적 주체성과 참여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민자치’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앙과 대칭적으로 사용되는 지방이라는 용어도 과감히 없애야 한다.    

대의 민주주의의 대의, 어떤 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묘사[표현]한다는 의미인 재현, 우리가 세계를 분류할 때 쓰는 머릿속의 기준을 의미하는 표상을 영어로 표기하면 모두 representation이다. 이는 특정한 상황이나 개별적인 특징보다는 일반적인 상황과 동일성을 내포하고 있다. 대의·재현·표상에 빠지게 될 때 가장 큰 문제점은 개별적 현실과 특징, 현실의 다양성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제각기 다른 고유한 특이성 혹은 차이들이 소멸된다. 예를 들면, 이 세상의 파란색은 너무나 다양하고,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파란색은 제각기 다른 색일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이미 파란색이라는 표상을 가지고 이 세상의 색을 바라보고, 동일한 파란색을 재현해내고, 하늘 빛깔이 파란색을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한다. 자치분권은 지역마다 다양하고 자치분권의 모습이 어쩌면 지역마다 제각각 다를 수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파란색을 인식하는 것과 같이 자치분권을 인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치분권은 표준화된 동일성보다는 지역의 고유성과 개별성이라는 ‘차이’가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자치분권은 중앙의 권한과 권력을 지역에 이양하는 것과 동시에 지역의 고유성과 특이성 등 차이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동일한 모습으로 재현되는 자치와 분권을 지양해야 한다. 자치분권은 지역의 본질적이고 본래적인 삶이 온전히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자치분권이 지역 의회와 자치단체장에 의한 대의 정치로 재현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획일적이고 표준화된 개념에 한정된 자치분권을 지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표준화와 동일성에 기초한 중앙집권적 사고와 하등의 차이가 없다. 종국에 가서는 동일성으로 수렴되는 행정을 넘어서지 못하고 지역 시민들의 참여는 욕망과 욕구에서 출발하게 되고, ‘자기 통치하는 주체되기’가 아닌 ‘수동적 통치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자치분권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지금의 지역과 지역 정부들은 차츰 자체의 역량을 갖춰나가고 있는 추세다. 심지어 중앙과 중앙 정부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있는 부분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분권을 추진하면서 지역의 시민들이 존엄한 주권적 주체로서 ‘자기통치하는 주체되기’를 지향하고, 동일성의 잣대가 아닌 차이성에 기초한 자치를 이루어가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자치분권 춘천선언-Again 2002’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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