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운 (연세대학교 정경·창업대학원 겸임교수)
양진운 (연세대학교 정경·창업대학원 겸임교수)

지난달 18일 춘천시 재정계획심의위원회가 개최됐다. 1박 2일 동안 꼬박 읽어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가 심의위원들 앞에 놓였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고작 3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1년에 1조3천억 원에 달하는 모든 부서의 행사 예산에 대해 꼼꼼하게 질의하고 진정성 있는 답변을 받아야 했다. 춘천시 예산에 대한 심의위원으로 두 번째 참여하면서, 심의방식의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고민해봤다.

우선은 예산심의 방식부터 재구성해야 한다. 전체 부서의 예산을 한자리에서 심의할 것이 아니라 부서별로 나누어 2~3회에 걸쳐 검토해야 한다. 1박 2일 워크숍을 하며 심도 있는 논의를 하는 것도 방법이다.

300쪽에 달하는 예산 심의자료 또한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위원들에게 배포돼야 한다. 지금처럼 심의를 2~3일 앞두고 이메일을 통해 어마어마한 자료를 보내선 안 된다.

심사위원들의 권고안과 조건부 통과안에 대한 피드백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담당 과장의 5분 브리핑과 이후 10분의 시간만 잘 버티면 예산 원안이 그대로 처리되는 기존의 시스템에 대한 유일한 제동장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획예산과 자체 심사에서 승인되지 않은 예산안은 한 건도 없었다. 그나마 위원들이 조건부 승인을 몇 개 주문했으나, 이 권고안마저도 예산안에 반영될지 의문이다.

예산안을 들여다보니 돈을 써야 할 곳과 아껴야 할 곳에 대한 균형감도 아쉬웠다. 수많은 선심성·이벤트성 행사는 마치 시청을 기획사로 착각하게 할 정도였다.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자체사업도 거의 없었다. 각자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춘천을 위해 심의위원직을 수락한 심의위원들에게 주어진 물 한 병과 대조를 이뤘다. 

춘천시는 정책적으로 친환경 도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회의 때마다 플라스틱 물병이 버젓이 등장한다. 시의 정책을 전달하는 공무원이라면 ‘일회용품 없는 청사’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이뤄져야 하지 않았을까?

심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노력에 대한 회의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라톤 심의 3시간 즈음에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질문을 할 의욕도 줄어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후반부의 질의에 응했던 공직자들은 운이 좋았다고 봐야 한다. 

주어진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심의한 몇몇 위원들은 춘천의 주인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춘천시가 시민들을 진짜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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